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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joge May 10. 2017

부모님과 함께 시간 보내기

2017년 5월 9일의 일기


어버이날을 전화 한통과 송금으로 간단히 끝내기엔 아무래도 죄송해서 사전 투표도 마친김에 선거일에 시골 부모님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언젠가 자식이 다 크고나서 부모님께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통 전화도 못드리고 찾아뵙지도 못할때면 문득 문득 이 말이 생각난다.


물론 시골 부모님집에 가면 제일 좋은건 나다. 가면 반겨주는 짬이(냥) 강이(강쥐)가 있고, 엄마가 건강하게 맛있는 집밥을 차려주시고, 아빠가 죽도록 운동안하는 나를 산에 데리고 가 주신다. 꽃, 나무, 산 경치, 새소리, 맑은 공기는 덤이다. 부모님은 꽃이며 나무며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주며 예뻐하시는데 나는 소나무나 장미처럼 일반적인 이름이 아닌이상 한 번 들으면 다 까먹는다. 운이 좋으면 텃밭에서 자란 딸기나 블루베리도 맛볼수있다. 시장의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 손으로 따 먹는 딸기 맛은 뭔가 다르다.

짬이는 서울서 크다가 부모님이 시골집에 정착하면서 데려가셨는데 이제는 시골냥이가  되었다. 먹고 자는 창고를 거점삼아 어슬렁 어슬렁 집근처 동네를 마음껏 누비고 다닌다. 옆집 창고  구멍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텃밭일 하는 엄마 곁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고, 강이 데리고 산책가는 아빠를 따라 뒷산에도 간다. 그래도 내가 갈때면 어디서 놀다가도 반갑게 총총총 달려온다. 짬이를 쓰담쓰담하며 예뻐하고 있으면 옆에서 강이가 자기도  달라고 애기처럼 낑낑댄다.

총총총 달려와 그르릉대며 날 반겨주는 짬이
텃밭일 하는 엄마 곁을 지키는 짬이와 강이(를 상상하며 합성해봄)

집밥은 시골집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호사다. 이번에는 향긋하게 무친 취나물, 담백하고 구수한 아웃국, 부드럽고 달달한 생연어, 노릇하게 구운 항정살을 한 상 차려놓고 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근래 한 식사중 가장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라 음식에 담긴 사랑과 정성, 나를 둘러싼 정겨운 분위기가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채워주는 것이리라.

이번 별미는 생연어. 길게 썬 생연어를 와사비 푼 간장에 찍어 김에 싸먹고 와인을 한모금 마시면 정말 맛있다.

선거일이지만 가족 모두 사전투표를 마쳐서 여유롭게 관전하면 되는 하루였다. 이번 선거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남다르다. 선거를 둘러싼 정치/역사/사회적 맥락, 어느 때보다 높은 국민들의 관심과 열망, 이전 선거보다 확실히 스펙트럼이 넓어진듯한 선거 아젠다를 보면 그렇다. 한 자리에서 개표 방송을 보는 아빠, 엄마, 나 우리 셋이 각기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만 봐도(이전 선거에는 모두 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복잡미묘한 현 상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각 후보가 얼만큼의 득표율을 보이느냐(민심) 그 결과가 향후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정치개혁) 그래서 우리 사회는 정말 변할 수 있을 것인가(사회개혁) 하는 보다 심층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개표 방송을 보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선관위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공식 발표를 마친 후였다. 새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새 나라로 이끌어주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JTBC 개표방송을 봤다.

 조갯살이 들어간 미역국에 밥을 말아 아침을 든든히 먹고 아빠와 강이와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출발하면서 아빠가 휘리릭 휘파람을 부니 누워있던 짬이가 일어나 종종 걸음으로 따라온다. 아빠한테 말로만 들었었는데 짬이가 산책을 따라나서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고 재밌었다. 서울 살던 집냥이가 어느새 활동 반경이 꽤나 넓은 시골 산책냥이 된 게 기특하다. 너도 이만큼이나 컸구나!


산에는 보라색 수선화와 흰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조금 멀리 희뿌연 아침 안개가 짙푸른 나무들을 휘감은 모습을 보니 규모는 작아도 자연의 도도함같은게 느껴졌다. 나무들에 둘러싸여 새소리를 듣고 아침 찬 공기를 마시니 몸과 맘의 독소가 조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런게 시골 사는 낙인데, 요샌 이곳도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해서 슬펐다.

다시 서울 가는 길. 짧은 하루였지만 시골집에 다녀가면 에너지를 충전하고 가는 기분이다. 하루 잘 쉬었으니 때론 열심히 달리고 때론 마음을 따라 천천히 흐르면서 그렇게 지내야겠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더 늘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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