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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소녀 Jun 19. 2024

남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려면

최근 남편이 승진을 했다. 월급도 오르고, 팀원으로 있다가 팀장으로 되면서 업계 축하도 받고 입이 귀에 걸렸다. 같은 해에 입사해 비슷한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서로 자극도 되고, 은근 연봉 경쟁도 하던 사이였는데, 남편은 승승장구 뭐, 그렇진 않더라도 어쨌든 경력을 쌓아 계속 쭉 앞으로 나갈 기세고, 난 이 업계에서는 도태되어 사라지겠지.



어쨌던 나의 선택으로 결정한 일이건만, 난 다시 봄날의 앳된 새싹이 되어 아직 가야할 길이 먼데, 모진 바람과 거센 폭풍우 아래 끈기를 가지고 노력해서 어여 빨리 신입의 시절을 거치고, 경력의 시간을 거쳐 꽃피워야 할텐데, 암튼 이런 조급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에 놓여있는 와이프를 뒤로 하고, 퇴근 후, 술 한잔 거하게 마시고 들어와 흥얼거리는 남편 얼굴이 어제 따라 왜이리 꼴보기 싫었던지. ㅎㅎ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승진 되기 전, 부서를 옮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회사 관련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 놓을 땐, 정말 진심으로 다독여주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꿈틀거렸는데 막상 승진이 되고 싱글벙글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내 처지와 비교가 되며 심통 나는 꼴이란.


노을처럼 붉게 술로 물들어 헤벌쭉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내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여 어젯밤 꽥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러면서도 한편, 왜 이렇게 난 심통이 나 있는 것일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남편한테도 이러고 있네. 


그런데 사실, 이 경쟁심리가 지금껏 나를 성장시켜 왔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 하기 싫었던 일도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질 수 없었기에 자격증까지 따며 버텼었고, 누군가에는, 자격증이 레주메를 조금이라도 빛나게,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수단이였을 수 있겠다만, 나에게는 정말 나와의 싸움이었다. 왜 이걸 공부해야 하지. 이게 나에게 어떤 가치인것인가. 하면서도 지기 싫어 했던 공부. 정말 그저 남들에게 뒤쳐지기 싫어서 공부하고 일했던 과거.


그렇게 버티다가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말자. 좀 더 내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회사를 나온 것이고, 그때 참 많은 사람들이 말리기도 했다. 넌 자격증도 있는데 왜 그만두는 거니? 아깝지 않니? 그런데 진심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연봉을 올리기 위해 자격증을 땄다기 보단, 버티기 위해 딴 것이고, 그걸 통해 난 자신감을 얻었으니 되었다 생각했다. 하기 싫은 공부도 일도 15년을 했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냐. 뭐 이런거? 그런데 이런 자신감도 요새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져 있다. 



남의 기쁨과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줄 수 있는 여유란, 그런 마음가짐은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어제 남편에게 꽥 소리를 질렀던 나의 혼란한 속내를 쓰담으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번뜩 이해가 되었다. 항상 모든 일에 당사자인 내가 개입되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으나, 제3자를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일잘하는 팀원을 경계하는 팀장, 좋은 학원, 좋은 정보를 남들에게 잘 알려 주지 않는 엄마들, 뭐, 이 외에도 수많은 예시 상황들이 있을 텐데, 이런 행동 양식의 원인은, 남들 잘되는 게 배 아픈 심리. 즉, 내가 (내 아이가) 잘 되어야 하는데, 남들이(남들 얘들이) 잘 될까봐 불안한 심리. 즉 바꾸어 말하면, 자기 확신 부족, 나의 불안 심리. 



그래 맞다. 난 아직도 불안의 터널에 있는 게 맞다. 예전에는 도태될까 불안한 심리를 경쟁으로 극복했고, 지금은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신 부족. 그런 심리적 불안이 남편의 축하를 진심으로 머금을 수 있는 여유를 뿌리친 것일 수도. 


그러나 지금의 불안은 예전의 불안과 결이 다르다. 굉장히 자연스런 전개란 생각도 든다. 모든 삶의 과정이 유사하 듯,  아무것도 모르고, 힘겹게 위 아래 눈치 봐 가며, 일만 열씨미 배워야 했던 회사원 신입시절 얼마나 불안하고 때려지고 싶었던가. 불안의 터널을 지나야 꽃이 필 수 있는 것이고. 그저 난 새로운 도약을 위해 새로운 불안의 터널 앞으로 뒤돌아 온 것 뿐. 그런데 뭘 그리 속이 좁았던가. 갑자기 창피하고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꽃들의 아름다움이 가지 각색이 듯, 모든 동물들의 특성과 개성이 가지 각색인 것 처럼, 우리 인간들 역시, 찬찬히 살펴보면 서로 다른 재능과 개성을 지니고 있고, 그러므로 나는 남들의 것이 아닌, 나의 재능, 나의 개성, 나의 방향성에 집중하면 될 뿐이다. 내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집중하면 될 뿐, 내가 어떻게 꽃피울까에 집중하면 될 뿐, 남들과 나를 동일시 하며 비교하는 의미 없는 일로 정신을 갉아먹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남편은 여름 한낮에 아름답게 노란 잎을 활짝 피고 만개하는 해바라기, 그런데 나는 해바라기가 아닌데 어쩌라고. 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련꽃이다. 예쁘게 열린 하얗고 연분홍색의 꽃이 올해는 이미 우수수 떨어졌지만 다시금 내년 봄에 또 돋아나 만개할 목련꽃.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고유성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행복 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배운다.

그래야 해바라기의 아름다움도 장미의 아름다움도 소나무의 우직함도 그 모든 것들을 본연의 모습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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