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한 줌의 가치

by Taeyoung

아주 오래전,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 남성 어르신의 집을 방문한 날이었죠. 반지하, 익숙한 풍경.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어둡고 눅눅한 공기, 장마철마다 침수 피해가 반복되는 대표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어르신은 활짝 웃으며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마치 손자를 맞이하듯 밝은 표정이셨죠. 하지만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코끝에 닿는 퀴퀴한 냄새와는 다르게 벽지는 참 화려했습니다. 연한 옥색 벽지였는데, 어쩐지 낯설도록 고운 색이었습니다.

“어르신, 벽지가 정말 예쁘네요. 어디서 구하셨어요?”

말을 건네며 벽을 슬쩍 만졌는데, 제 손끝에 곰팡이가 고스란히 묻어 나왔습니다. 그 예쁜 옥색은 곰팡이로 변색된 것이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여쭈었습니다.
“어르신께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도배일 거라 짐작했죠. 그런데 돌아온 답은 너무나도 의외였습니다.

“복지사 양반, 나는 햇볕이 가장 필요해요.”

반찬도, 옷도, 약도 아닌 햇볕.
그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컴컴한 방 안, 전기요금이 아까워 형광등도 잘 켜지 않으신다는 어르신. 제가 보기엔 형광등을 켜면 벽에 핀 곰팡이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때는 어르신의 바람을 들어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연히, 반사판과 거울을 설치해 건너편 건물의 햇볕을 반사해 반지하 집 안까지 볕이 들어오게 하는 기술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금이라면, 그 따뜻한 햇볕을 어르신께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 한켠이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듣지 못하면, 정작 햇볕이 필요한 이에게 반찬만 들고 가는 셈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순간을 덮어두려 하면 결국 또다시 곰팡이처럼 문제는 피어오르게 됩니다. 도배를 반복하는 일 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입니다.
그날, 어르신의 댁을 직접 찾아갔기에, 어르신의 말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직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라면, 의사결정권자라면, 책상 위 보고서만 보지 말고 현장을 찾아가야 합니다.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직접 서봐야 합니다.

햇볕 한 줌이 누군가에게는 반찬보다 귀하다는 걸,
그날 저는 배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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