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줄 알았지 뭐야
남편이 금요일 퇴근 후 시가에 내려갔다.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겨서다. (같이 가자고 안 해줘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친구를 만났고 토요일에는 혼자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고 왔다. 올림픽대로를 따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가는 데 무려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돌아오는 데는 37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전날 밤 잠을 설친 탓인지 10시도 되기 전에 소파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몇 번의 알람을 무시하고 나서 눈을 떴더니 7시 50분. 1시간쯤 미적대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신발장에서 운동화가 담긴 가방을 꺼내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어쩐지 외면할 수 없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운동을 한다.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늙어서 덜 아프고 싶다는 염원을 담았으니 일종의 기도에 가깝다.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탁구, 배드민턴, 필라테스, 요가를 두루 맛보며(문제는 맛만 본다는 사실) 운동과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필라테스가 내게 맞는 운동인가 보다 싶었을 무렵 무릎관절이 아파왔다. 남편의 권유로 PT를 받기 시작했다. 이미 닳은 연골은 어쩔 수 없지만 뭉친 근육을 바로바로 풀어주고 문제가 되는 걸음걸이를 교정한 덕분에 무릎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육체를 이용한 활동은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했지만 2년간 개인지도를 받으며 운동 방법을 잘 배운 덕에 요즘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기가 죽지 않는다. 더 이상 PT를 받지는 않지만 러닝머신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기구를 옮겨 다니며 팔, 등, 배 근육을 단련한다. 거울을 마주하고 매트에 앉아서 여기저기 스트레칭까지 마치면 50분이 꽉 찬다.
약간의 땀방울이 맺힌 채로 집에 돌아오는 길은 대단한 미션을 완수한 사람처럼 기분이 좋다. 좋은 기분을 곱씹다 보니 운동이 할만해졌다. 적어도 싫지는 않다. 조금씩이나마 근육이 잡히고 자세가 곧아진다. 변화가 더딜망정 분명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감한 후부터는 몸이란 정직한 것이로구나 한결 믿음직스럽다. 일요일인 어제는 운동 후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아파트단지 한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날씨를 느꼈다.
하늘이 높고 파랗다. 얇게 펼쳐진 구름은 주시해서 보지 않으면 정지한 듯 느리게 흐른다. 아직 물들지 않은 단풍나무 이파리들이 산뜻한 초가을 바람에 조금씩 살랑인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감각으로 느끼며 귀를 열고 소음을 듣는다. 아직은 제대로 된 말을 구사하지 못하고 옹알거리는 어린아이의 투정과 그게 재밌다는 듯 사진을 찍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정겹다. 산책하는 개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짖는 소리도, 멀리 들리는 자동차의 소음도 거슬리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 땀을 씻어내고 친정에서 챙겨 온 반찬들을 꺼내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요즘 부쩍 주목받고 있는 '소식좌'라 불리는 사람들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음식물을 씹었다. 밥을 유난히 빨리 먹는 편인데 그동안 밥을 거의 마시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밥을 씹고 씹고 또 씹다 보니 먹는 동안 이미 포만감이 느껴진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소식좌 놀이 덕분에 식탐이 조금 줄었다.
빨랫감을 챙겨 세탁기를 돌리고, 세탁이 끝나면 건조기를 돌리고, 분리수거를 했다. 괜히 이불을 꺼내 다시 개켜 장에 잘 넣고 그저 장에 있었을 뿐인데 낡아져 버린 몇 가지가 눈에 띄어 내다 버렸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먼저 세탁기를 돌리는 사람은 남편인데. 어떤 일요일은 빨래하기 귀찮을 법도 한데 남편은 명령어가 입력된 AI처럼 오류가 없다. 집안에 있기에는 영 아까운 날씨라 카페라도 갈까 하다가 단지 안 벤치를 찾았다. 멀리 갈 이유가 있나 어차피 공평한 햇살인데. 몇 줄이나 읽었을까. 한 무리의 가족이 우르르 등장해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소음이 덜한 곳을 찾아 독서를 이어나갔다.
종일 TV도 켜지 않고 운동, 독서, 산책, 집안일로 하루를 꽉꽉 채웠다. 밥도 꼭꼭 씹어 천천히 먹고 주말이 끝나간다며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나의 어제 하루를 관찰했다면 고민없이 나를 세상 부지런한 사람으로 분류할 것이다. 심지어 10월에 치를 중간고사 시험문제 초안까지 작업했다. 집중해서 출제를 하는 사이 해가 지고 창밖이 깜깜해졌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돌아오는 열차를 타기 위해 ktx역으로 향한단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온종일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남편이 집을 비운 주말의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서 안절부절하지 않으려고 빈 공간을 알차게 채웠구나.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배 위에 얌전히 두 손을 포개고 누워 낮잠을 자는 그 사람의 빈자리가 커서. 식사메뉴를 고민하며 줄다리기 아닌 줄다리기를 하고, 너 먹고 싶은 거 먹는 거라며 생색을 내고 서로 지적하고 타박하고 놀리는 일에 금단증상을 느껴서. 나는 착실한 모범생처럼 마음을 단단히 하고 차분한 하루를 보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남편을 빨리 만나고 싶어서 차를 몰고 서울역으로 향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마음의 문제가 아닌 체력의 문제였다. 나는 가만 집에서 기다렸다. 그때서야 티브이를 켜고 채널을 돌려가며 시간을 때웠다. 8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탄 그는 11시 반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와락 끌어안고 보고 싶었다고… 차마 얘기하진 못했다. 대신 내가 보고 싶었냐고 물었다. 일말의 표정 변화도, 다정한 눈 맞춤도 없이 응 이라고 기계적 대답을 하는 남편을 보고 나는 그냥 웃었다. 잘 훈련된 AI 답군. 결혼 9년 차 40대 부부의 54시간 만의 재회는 달달하지도 뜨겁지도 않았지만, 당신도 나처럼 알차고도 허전한 주말을 보내고 온 것임을 안다.
며칠 전 남편과 나눈 카톡 대화다.
-자기야 일요일 밤에 오지?
나 안경 맞춰야 되는데. 월요일에 맞춰야겠다
=맞추면 되지 왜
-자기가 봐줘야지
자기처럼 눈썰미 좋은 사람이
=내가 없으면 당최 뭘 하지를 못하는구만
(생색내는 꼴이 보기 싫어 나는 딴 얘기를 했다. 몇 초 후..)
=나 없으면 어쩔티비
어디 가서 망신당할까 화들짝 놀라서 그럴 때 쓰는 말 아니라고 용법을 설명하며 나무랐다. 이어 다시 톡이 왔다.
=저쩔티비.
남들의 문법이나 세상의 맥락 따위 연연하지 않는 위풍당당한 당신. 잘났다 정말. 그나저나 브런치에 자기 얘기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이런 얘기까지 구구절절 다 쓰면 어떡하냐고? 내 맘이지. 어쩔티비. (2022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