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취향, 모르면서 안다는 오해
얼마 전의 일이다. 어버이날 이후로 뵙지 못한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식사메뉴를 보리굴비 정식으로 정했다. 코로나 확진의 여파로 건강식에 집착하던 4월 언젠가, 동네 한정식 맛집에서 처음 보리굴비를 맛본 뒤로 반해버린 참이었고, 맛에 반하던 순간 자연스럽게도 엄마 아빠를 떠올렸다. 좋아하실 것 같다고. 녹차물에 밥을 말아서 손질되어 나온 굴비 한 점을 얹어 꼭꼭 씹어먹으면 고소한 맛이 배어 나오면서 마침내는 건강한 식사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밀려드는데 내가 공유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만족감이었다.
어려서는 부모님의 보호를 받다가, 자립을 한 뒤로 수평적 관계로 지내다, 더 시간이 흐르면 어느 순간 부모님을 돌보는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배운 것,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게 많은 부모님을 두었다면 다른 마음일까. 나이 듦에서 비롯되는 취약함은 마찬가지이니 같은 마음이려나 모르겠지만 특히 나는 내 부모님이 항상 짠하다. 부모님보다 가진 것, 누리는 것이 조금 더 많은 내가 (물론 모든 건 부모님 덕분이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더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하다. 말하자면 기꺼이 감당할 기분 좋은 압력 같은 것인데 그런 걸 의식할 때 내가 비로소 철이 좀 들었나 생각한다.
20년 넘게 일해왔고 맞벌이에 아이가 없으니 돈을 모으는 일이 어렵지가 않다. 모은다기보다 땡겨쓰고 갚는 형식이지만 어쨌든.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왔는데 어쩜 그리 늘 여유가 없이 쪼들렸을까. 애면글면 두 분이 평생 노력하며 사셨지만 늘 고만고만한 살림을 유지하며 돈 걱정하면서 사신 게 안쓰럽고 속상하다. 물론 이유는 명확하다. 자식 셋이 장학금도 없이 대학교를 마치느라 부모님 등골을 다 빼먹었다. 수완 없이 자산 없이 당신들의 노동만으로 그 무거운 삶을 지탱해오신 게 대단한 일이다.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을 마칠 수 있었던 게 사무치게 감지덕지한 일이라는 걸 늦게서야 알았다. 그런 고생 끝에 부모님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울컥한 마음이 든다. 압력은 더 커진다.
식당은 마침 9호선 전철역 앞이었다. 양천구에서 강동구까지 9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온 부모님과 동생을 식당에서 만났다. 보리굴비 정식 5개와 새우튀김을 주문했다. 순서대로 음식이 서빙되었고 마지막 단계에서 식사로 보리굴비가 나왔다. 요즘 건강을 위해 식단 조절을 하면서 체중감량에 성공한 엄마는 다이어트 성공기를 털어놓으며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웃음이 많아지는 소녀 같은 엄마를 보면 나도 이렇게 늙어가려나 기대가 된다. 의외로 가장 좋은 반응을 보인 것은 동생이었다. 생각보다 맛있다면서 메뉴를 정한 내 기분을 맞춰주었다. 각자에게 배당된 한 마리의 굴비를 녹차물과 함께 열심히 먹었다. 밥그릇을 비워갈 무렵 아빠의 굴비 접시가 여전히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이가 좋지 않은 아빠는 반건조된 뻣뻣한 굴비가 쉽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구나 마음이 쓰였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에는 이런저런 타박이 많으신 분인데 딸과 사위가 사는 식사라 참고 드시나 보다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공원에 갔다. 허브 천문 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높은 평지에 여러 종류의 허브를 조화롭게 심어놓았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여러 식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허브향들이 평화로운 안정감을 주었고 분위기와 어우러져 곳곳에 배치된 조각상들도 볼만했다. 포토존으로 꾸며놓은 곳에서 두 분 사진을 찍어드렸다. 사진을 권할 때마다 마다치 않고 포즈를 잡아주셨다. 이 사진이 부모님이 아닌 나를 위한 것임을 당신들도 아셔서 그럴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엄마 아빠가 풍경에 감탄하며 하시는 말씀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자식이 없는 내가 나이 든 부모님을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와 공원 산책에 이어지는 마지막 코스는 카페였다. 이 동네 사람이라면 다들 알만한 유명한 카페로 차를 몰았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네 잔의 아메리카노와 한 잔의 바닐라 라떼를 주문했다. 빵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라 빵을 권했지만 부모님은 배부른데 무슨 빵이냐며 손사래를 치셨다. 주문을 하러 홀에 들어갔다가 먹음직스럽게 도열된 빵을 보니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다. 앙금을 잔뜩 품은 빵을 골라 쟁반에 담았다. 워낙에 팥앙금을 좋아하시는 아빠는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빵을 맛있게 드셨다.
토요일 오후라 카페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 탓인지 음료는 15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나왔다. 곱게 나뭇잎이 그려진 바닐라 라떼를 아빠는 한참을 바라보셨다. "예쁘네." 표면의 나뭇잎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가만가만 커피를 드셨다. 대화가 이어지던 중 몇 번이나 아빠의 시선이 커피잔 나뭇잎에 가닿는 것을 보았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볼 때처럼 아버지가 귀엽게 느껴졌다. 아빠는 평생을 성실하게 살았다. 몇 년 전 뇌 속 종양을 발견하고서야 일손을 놓으셨다. 공원에서 내려올 때 앞서 걸어가시던 아빠의 뒤통수에 길게 난 수술 자국을 보았었다. 하마터면 오늘의 식사와 산책이 없을 뻔했구나 모든 게 감사했다.
바닐라 라떼의 마지막 모금을 넘기고 잔을 내려놓으며 아버지가 "아, 맛있다."라고 흡족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제야 우리 아빠의 취향을 저격한 것은 보리굴비가 아니라 바닐라 라떼임을 알았다. 아빠는 바닐라 라떼를 처음 드셔보신다 했다. 달달한 커피를 원하시기에 내가 고른 거였다. 또 한 번 부모님을 오해했다. 왜 당연히 보리굴비를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을까. 살면서 지겹도록 먹는 게 한식인데 어째서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로 늘 한정식집을 떠올리는 것일까. 바닐라 라떼에 반한 아빠로 인해 대화의 주제는 부모님의 취향으로 옮아갔다. 요즘 집에서 즐겨 드시는 음식이 무엇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파스타란다. 엄마의 레시피는 시판 소스에 의존하지 않고 훨씬 정식이었다. 그리하여 다음번 식사 때는 파스타 맛집에 가기로 약속했다.
라떼 아트로 그린 나뭇잎을 연신 감탄하며 바라보던 모습은 아빠에 관한 인상적인 장면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뭐든 다 괜찮다고 하시며 일부러 취향을 드러내지 않으시니 부모님의 취향을 알기가 쉽지 않다. 고정관념을 경계해야겠다. 70대 중반이라는 그 하나의 정보로 식성을 비롯한 여러 취향들을 속단하고 가두지 말아야겠다. 나는 안 해본 것, 못 먹어본 것, 가보지 못한 곳, 핫한 것, 힙한 것을 좇으면서 어째서 부모님한테는 매번 뻔한 것만 내밀었을까. 40대 여성이라는 틀로 내 취향을 단순화해서 예측해버린다면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나. 효도니 은혜니 운운하면서 정작 아주 기본적인 것, 그러니까 내 부모님을 2022년 대한민국을 살아나가는 한 남자와 여자로, 각자의 서사와 개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것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걸까.
나중에, 그러니까 아주아주 나중이길 바라는 그 나중에 그들을 추억할 때 우리 엄마 아빠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는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셨는지, 어느 여행지를 좋아하셨는지를 속속들이 아는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일단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다. 어느 것에 감탄하시는지 무엇을 보고 예쁘다 하시는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를 낳고 길러준 세상 특별한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분들과 살가운 통화부터 더 자주 할 일이다. (2022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