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최전선, 감각

by 박기복

창문을 열었다. 환기 목적이기도 하고 바깥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격리 7일 차. 갇혀 지내는 것은 딱 오늘까지 만이다. 화사하고 따뜻한 햇살이 창을 통과해 책상에 와닿는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아이들 목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놀이터에는 고작 아이들 서넛이다. 창문을 타고 시원한 바람도 들어온다. 반팔을 입고 있는 맨살에 와닿아도 괜찮은 온도의 바람이다. 격리를 해야 하는 처지만 아니면 당장 밖으로 뛰어나갈 만큼 유혹적인 날씨다.


나의 격리 장소는 서재방이다. 한편에 이불을 세팅해두고 필요할 때만 책상에 앉는다. 인후통이 생각보다 빨리 나아 방심하고 있다가 어제 아침부터 모래주머니를 단 듯 몸이 무겁게 느껴져 종일 누워있었다. 보일러를 튼 것도 아닌데 이불 속은 뜨끈하고 부드러운 이불은 덮고만 있어도 위로가 된다. 오늘 아침 컨디션은 훨씬 좋아졌지만 격리 마지막 날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정오가 지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인후통을 염려해 24시간 가습기를 틀어두었다. 아주 오래전에 사서 잘 쓰다가 지난 몇 년은 처박아둔 가습기를 이번에 오랜만에 꺼냈다. 페트병을 끼워서 쓰는 간단한 방식이라 고장 없이 잘 돌아간다. 수증기가 쉼 없이 뿜어져 나오면서 작은 기계음이 들리는데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나는 소리에는 매우 관대한 편이다. 윗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남편은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만 나는 그의 반응을 보고서야 개가 짖는구나 할 뿐이다. 오히려 청각의 공백을 잘 견디지 못한다. 뭐든 소리가 나는 것이 있어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음악이나 영상을 늘 틀어둔다. 이게 청각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둔한 덕이었음을 최근에야 인지했다. 청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소리에 인색하다.


음악도 영상도 틀지 않았다. 고요를 즐겨봐야지. 적막할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집안의 기계들이 쉼 없이 제할일을 하면서 소음을 내고 창을 통해 요란한 소리들이 때때로 들어온다. 나는 왜 그렇게 쉼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가. 유튜버의 각종 꿀팁, 영화나 드라마, 음악에 이르기까지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바쁘게 채워 넣으려고만 했다. 수년 전에 제목만으로 많은 이들을 홀렸던 책 <생각 버리기 연습>에는 감각에 제대로 몰입함으로써 잡생각을 줄여나가는 방법이 안내되어 있었다.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게 비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샤워 명상, 걷기 명상 같은 것도 결국은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순간에 집중하고 머물 수 있다는 동일한 원리를 담고 있다.


확진 통보를 받고부터 입맛이 없다. 약을 먹기 위해 식사를 꼬박꼬박 하고 있지만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후각과 미각이 둔해진 탓이라는 걸 다른 분의 글을 읽고서야 알았다. 생의 최전선에 감각이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에 나를 붙잡아두는 것도, 위험을 감지하는 것도, 삶을 지탱하는 욕망을 유지하는 연료도 결국 감각이구나. 오감을 열고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라고 쓰면서 낭패감이 든다. 또 생각을 해버렸군.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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