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대왕의 귀환

by 박기복

그가 돌아왔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덜컥 놀랍고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달콤함, 부드러움이 떠올랐다. 수년 전이라 어렴풋한 느낌일 뿐 또렷한 기억은 아니었기에 다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설렘으로 이어졌다. 얼마나 부드럽고 얼마나 달콤할지.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초라하게 사라져 버린 그를 다른 사람들은 환대해줄 것인가. 그의 귀환은 성공할 것인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있는 오래된 상가의 코너 자리는 원래 만두 가게였다. 코로나의 여파인지 문을 닫더니 한참 반짝 세일을 하는 물건들을 파는 장소로 활용되다가 드디어 영업 게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종목은 대왕 카스테라와 호두과자. 대왕 카스테라는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대만 카스테라이기도 하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커다란 크기에 비해 가격도 합리적이라 인기였다. 인기는 들불처럼 번져 곳곳에 대만(대왕) 카스테라 가게가 등장했다.


유행은 짧았다. 먹거리 엑스파일이라는 떠들썩한 프로그램의 조준을 받고는 순식간에 몰락해갔다. 재료 논란이었다. 저급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식으로 보도가 되면서 식품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치명상을 입고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당시의 논란 자체가 옳지 않았다고 재평가가 이루어진 분위기다.) 마침 주재료인 계란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요인도 있었다고 한다. 2017년의 일이다.


커다란 오븐을 들여놓고 영업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번은 사 먹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유는 영업 첫날부터 몰려든 인파 때문이었다. 긴 줄이 영업 첫날부터 카스테라 가게 앞에 등장했다. 개업 이벤트로 할인을 해준다는 광고 문구 때문이라 여겼다. 곧 줄어들겠지. 그러나 줄은 시도 때도 없었다. 이른 퇴근을 마치고 헐레벌떡 달려가도 비교적 늦은 밤을 공략해봐도 심지어 평일 휴가를 낸 남편을 보냈을 때에도 줄은 여전했다.


몇 번 줄을 선 적도 있었다. 직원이 나와서 나보다 몇 자리 앞에 서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여기서부터 대기 45분이세요라든가 심지어 여기서부터 한 시간 기다리셔야 해요라고 언질을 해주면 혀를 차며 돌아서곤 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줄이 늘어서는 현상은 한 가지 합리적 추측을 가능케했으니 맛에 대한 확신이었다. 한번 먹어본 사람이 다시 줄을 서지 않고서야 저렇게 줄이 길 리는 없었다. 확인해야 했다. 가까이 존재하는 맛있는 음식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 나같은 식탐 미식가의 숙명이었다.


지난 월요일 뿌리 염색을 마치고 나오니 6시 40분쯤 되었다. 귀찮아서 미루던 일을 해치운 데다가 저녁을 거를까 생각하던 중이어서 할 일이 없어진 한가한 기분이었다. 대왕 카스테라 가게 앞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한번 시도해볼까. 줄을 섰다. 십 분쯤 지났을까. 어김없이 직원이 나와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50분은 기다리셔야 해요. 이번만은 그 말을 듣고도 돌아서지 않았다. 저녁이라 꽤나 찬바람이 불었다. 스마트폰을 벗 삼아 끈질기게 기다렸다. 목표물을 품에 받아 안기까지 50분 이상이 걸렸다. 갓 구워 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찬바람에 식은 손을 데우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을 때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카스테라를 깜빡 잊고 나오는 끔찍한 상상도 해보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잘 챙겨 집에 돌아왔다.


역사적 순간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만남이다. 한 조각 썰어 먹어보았다. 꿀맛이었다. 과하지 않은 단맛. 촉촉함을 품은 부드러움. 비리지 않은 계란 내음. 어렸을 적 엄마가 오븐으로 구워주던 카스테라 생각도 났다. 납득이 되었다. 줄이 길었던 건 그럴만해서였다. 앉은자리에서 반 가까이를 해치우고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날 저녁에 꺼내 먹은 차가운 카스테라는 또 그 나름의 맛이 있었고 결국 '대왕' 카스테라를 이틀 만에 깔끔히 먹어치웠다. 카스테라를 또 먹기 위해서는 긴 줄을 감내해야 한다. 내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날 카스테라 대기줄 1열에 서있으면서 가게 안의 풍경을 관찰할 수 있었다. 4명의 젊은이들이 부지런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둘은 가게 앞에 세팅해놓은 기계를 돌려가며 호두과자를 구웠고 둘은 안에서 반죽을 옮겨 담고 오븐에서 구워지는 카스테라를 관리했다. 적당한 시점에 오븐을 열더니 꼬챙이 하나를 오븐 안의 카스테라에 찔러 넣었다. 몇 년 전에 화초를 잘 키워보려고 산 토양 습도, 산도를 체크해주는 도구와 비슷해 보였다. 두꺼운 빵의 안쪽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리라. 저런 믿음직한 도구가 있으니 앞으로도 일정한 맛이 보장될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는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과 깊은 지하에 사는 근세(박명훈)가 등장하는데 둘의 공통점은 사업 실패로 경제적 몰락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내걸었던 간판은 공히 대만 카스테라였다. 그 설정은 다수의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요소였다. 뜨거운 유행과 순식간의 몰락. 그 광경을 목격한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전국의 수많았던 대만 카스테라 사장님들의 피해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줄을 서지 않고 카스테라를 먹어보기 위해 다른 가게는 없나 검색해보았다. 이미 곳곳에 속속 그들이 도착해 있었다. 돌아온 대왕 카스테라를 다룬 뉴스도 눈에 띄었다. 부디 더 이상은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 가게 앞의 긴 줄을 보고 누군가 창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들불처럼 유행이 번져 변덕스러운 대중의 입맛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자영업자들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의 한숨을 듣고 자라는 아이들이 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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