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10여 년 전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식물을 키웠다. 주말이면 식물 모종과 화분을 사다가 분갈이까지 받아서 오곤 했다. 화분 개수를 하나씩 늘려가며 베란다에 도열해놓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식물을 왜 들이기 시작했을까. 초록이 좋았을까. 베란다가 허전해 보였던가. 동기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식물에 대해 가져온 애정은 꾸준하고 진실된 편이다. 나는 그들을 아낀다. 바꾸어 말하면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것인데 그렇게 된 건 그들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들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했던 순간을.
식물을 몇 번 죽여본 적이 있다. 다시는 푸른 잎으로 돌아올 수 없겠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다. 이젠 끝났구나 하는 씁쓸한 확신, 작은 절망 같은 것을 경험하고 나면 그들이 며칠 전까지는 살아있었던 존재였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사람이 그렇듯 그들의 몸속에도 쉼 없이 수분이 돌고 있었으니, 죽은 잎의 말라붙은 단면을 볼 때면 생명이란 이렇게도 부지런한 것이었구나 싶다.
태양을 향해 잎을 벌리고 선 모습은 어미새가 물어온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부리를 벌리고 아우성치는 아기새 같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이를 오매불망 바라보는 순정남녀의 마음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들은 꽤나 절실하다. 빛을 에너지 삼아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이니 광합성은 양보할 수 없는 욕망,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가만히 얌전한 식물에게도 삶은 절실하다.
내가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몇 년 전 읽은 신영복의 <담론>에서 나를 사로잡은 대목이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사상범으로 구속된 후 무려 이십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지식인의 좌절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그 삶을 지탱해 준 것이 햇볕이었다는 고백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단숨에 납득이 되었다. 햇볕이 주는 위안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결혼 후 두 번째 집을 구할 때였다. 부동산 사장님이 전세계약서를 쓰면서 채광 상태를 굳이 불충분이라고 체크할 때에 계약을 멈췄어야 했는데. 마침 전세물량이 부족하던 때라 마음이 급했고 그날따라 날이 어찌나 화창하던지 기분이 들떴던 것 같기도 하다. 한낮에 집을 보러 갔음에도 온방 불을 다 켜놓은 사실을 어째서 놓친 것인지.
언덕배기에 지은 오래된 아파트 1층이었던 그 집은 들어갈 땐 분명 지상인데 반대편 창은 언덕 아래 파묻혀있어서 일조량이 반지하 수준이었다. 그 집에 살았던 2년간은 식물을 키울 수가 없었다. 식물만 키우지 못한 게 아니라 나도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그때 나는 세상에는 햇빛이 절실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란 걸 알았다. 휴일 낮시간이면 무조건 밖에 나갔다. 카페에서건 공원에서건 자리를 잡고 앉아 햇빛을 받았다. 그러면 조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을 보내고 나는 햇빛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집을 선택할 때는 채광부터 살폈다. 내 집 창 아래 초록을 뽐내며 자라는 식물들은 채광에 집착할 충분한 이유였다. 집안에 햇빛이 들 때면 저들의 생을 든든히 보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기분이다. 내가 저들을 안정적으로 돌보고 있는 믿을만한 사람이라서 안심이다.
봄이 오고 있다. 따뜻하고도 충분한 햇살이 내리쬘 것이고 햇빛 아래 온갖 것들이 반짝거릴 것이다. 햇빛 아래를 걷고 싶다. 태양이 차별 없이 뿜어내는 빛 에너지를 마음껏 흡수하면서 내 안에 부지런한 피가 돌고 있음을, 지금 내가 분명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다. (2022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