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싱어게인 시즌2 관람기

by 박기복

싱어게인 시즌2를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 시즌1은 뒤늦게 편집된 영상으로만 접했는데 이무진의 첫 무대가 퍽 인상적이었다. 기타를 매고 나온 스무 살의 청년. 헝클어진 머리,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은 의상. 노래를 부르기 직전의 고요.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하는 기대. 마침내 첫 소절이 흘러나와 음색, 분위기가 감지되는 그 순간의 전율과 탄성. 기깔나게 노래를 부르는 무명의 가수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열렬히 환호하는 8인의 심사위원들. 모든 게 압도적이었다.


시즌2는 이번 주에 10회를 방송하며 Top 10 선발을 마쳤다. 이미 본인의 노래를 발표한 바 있는 가수들, 그러나 아직 인기 가수나 유명 가수로 분류되지는 못할 이들이 나와 '다시' 노래를 부른다. 무명가수인 그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호명되고 개인사는 최소한으로만 공개될 뿐 무대 위에서는 오직 노래로 평가받는다. 최후의 10인에 들고서야 이름을 되찾는다는 구성은 꽤나 상징적이다. 우리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이름을 얻을 수는 없으니까.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가수들이 나와 떨림을 고백하고는 그 고백이 무색하리만치 능숙하게 무대를 휘어잡는다. 그들이 무대에 서며 찾고자 했던 것이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 뭉클해진다. 저만한 실력을 갖고도 끊임없이 자신의 노력이나 열정을 의심했을 것이 짠하다. 기회를 만나지 못해 자주 좌절했을 것이고 그래서 음악을 계속해도 될지 막막했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 수많은 노래를 연습했을 것이고 웃었다가 울었다가를 반복했을 것이다. 주변의 기대와 때로 싸우고 몇 번은 이기고 몇 번은 지면서 버텨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아 저 무대에 올라와 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 울컥하는 마음을 참기가 더욱 어렵다.


싱어게인에 나오는 8명의 심사위원들은 점수판을 들고 채점하는 날 선 평가자들이 아니다. 제1의 관객으로서 무대를 즐기고 감탄을 표하고 다정한 눈길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노래를 마치면 가수를 향해 어떤 면이 어떻게 얼마나 좋았는지를 정확하게 칭찬해주고 때때로 필요하고 정확한 조언을 한다. 그들은 점수를 숫자로 발표하지 않고 다시 듣고 싶은 노래, 다시 보고 싶은 무대를 향해 자신 앞에 놓인 1개의 어게인 버튼을 누를 뿐이다. 시청자인 나는 무대 위에 선 저 가수와 같은 마음이 되어 역시 또 한 번 뭉클한 마음이 된다.


착한 오디션이라는 별명이 붙고 심사위원들의 태도가 화제가 되는 건 우리 사회가 냉정한 평가에 노출된 사회라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오디션장이, 못지않게 경쟁적인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고 참가자들의 탈락이 내가 겪게 될지 모를, 혹은 이미 겪은 실패나 낙오와 겹쳐지는 와중에, 싱어게인 무대에 선 참가자처럼 따뜻한 응원 속에서 제 기량을 펼칠 수 있다면, 원 없이 나를 드러내고 진심과 열정이 왜곡 없이 격려받고 지지받을 수 있다면, 설사 경쟁에서 지더라도 패자부활의 기회를 얻고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아니 포기하지 않고 무대에 선 것만으로 인정받고 박수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좋.을.까.


싱어게인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음악을 하고 싶어 하고, 잘할 수 있고, 아마도 상당수는 음악으로 밥벌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모두 일치하는 그들이 일면 부럽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 자체를 잘 못했던 것 같다. 부모님의 기대와 사회의 시선을 내가 원하는 것과 구분하지 못했다. 만만한 게 공부였고 내가 받은 수능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선택했다. 내가 가진 돈에 맞추어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고르겠다는 구매자의 마음 딱 그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부끄러워진 후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자기만의 북극성을 좌표 삼아 걷는 이들이 대단해 보인다.


뭉클해지고 울컥하는 마음, 부러움과 부끄러움, 경외심, 그 외 여러 감정을 기꺼이 감당하고서라도 다음 주에도 그들의 무대를 다시 보고 싶다. 딸깍. 어게인 버튼을 누르며 이만 총총.(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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