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치 걱정

내일 걱정을 오늘로 당기지 말라.

by 박기복

눈을 감는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콧구멍에 의식을 집중한다. 콧구멍 주변으로 찬 바람이 느껴진다. 호흡에 의식을 모으고 생각을 비운다 비운다 비운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방심하는 사이 어느 틈엔가 생각이 끼어든다. 오늘 할 일이 뭐더라, 수업할 내용, 업무와 관련해 보내야 할 메시지, 잔소리가 필요한 아이 목록, 주말에 있을 나들이 계획, 부모님과 식사하기로 했었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진다. 몇 가지 잡념들이 쏜살같이 스쳐 지나간 후에야 아뿔싸. 또 생각을 해버렸네 낭패감을 느낀다. 다시, 호흡에 집중하자,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아침마다 시도 중인 10분 명상은 늘 이렇게 실패한다. 꾸역꾸역 10분을 채우긴 하지만 생각을 비우는 건 영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품고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이어가고 있다. 2주가 다되도록 머리를 비우는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수확이 없지는 않다. 명상 중 떠오른 잡생각들이 온통 미래에 벌어질, 또는 벌일 일들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문득 인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미래'를 살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는 밥 먹고 나서 할 일을 생각한다. (그 탓에 밥을 빨리 먹는다.) 출근하면서는 오늘 일과를 미리 걱정하고 퇴근하는 차 안에서 마음은 이미 거실에 누워있다. 한순간도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셈이다. 몇 분, 몇 시간 뒤의 일을 염려하는 건 그래도 봐줄 만하다. 연말에 몰아칠 업무를 수시로 떠올리며 기가 질리고, 갑자기 찾아들지 모를 병마를 염려하다가, 자식 없는 노년의 삶을 미리 심란해하기도 한다. 엄마와 이모가 정답게 김장하는 모습을 보며 언니가 없는 나는 누구랑 김장을 해야 하나 걱정했던 어린 시절부터 이미 나의 걱정은 클래스가 달랐다. 상당히 원대한데 몹시 한심하다.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 순간을 충만하게 자각하고 누리는 일의 가치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삶은 그렇지 못했다. 알고만 있을 뿐 행하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그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늘 걱정이 많고 불안했던 거였구나. 끊임없이 나를 파고드는 걱정들에 치여 흡족하게 생각해도 될 오늘을 놓치고 전혀 근거도 없고 지극히 객관적이지 못한 눈으로 현실을 비관해왔던 거구나, 내 괴로움의 근원이 여기 숨어있었구나, 답을 못 찾고 끙끙대던 문제를 겨우 풀어낸 기분이기도 했다.


기어이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고심 끝에 찾은 해법은 '되묻기'였다. 앞일이 걱정될 때, 괜히 불안감이 찾아들 때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거다. '그거 오늘치 걱정이니? 당장 꼭 오늘 해야만 하는 걱정이니?' 들숨처럼 들어오는 잡생각들에 이 질문을 들이대면 대부분 날숨처럼 내보낼 수 있었다.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내가 하는 걱정을 두고 근거가 있냐 없냐를 따지려면 또 생각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저 오늘치 걱정인지 아닌지만 따지고 내보내면 되니 참 간단하다. 그리고 놀랍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내가 하는 염려와 걱정들은 대부분 오늘치가 아니었다.


어제저녁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의 고질병인 월요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월요일은 주말에 충분히 쉬었으니 에너지가 충전되어 덜 피곤한 게 맞지 않냐고 했다. 자신은 평일의 피로가 쌓인 금요일이 훨씬 더 힘들다고. 그러고 보니 참 맞는 말이었다. 주말을 즐겁게 보내고 잘 쉬었는데 어째서 월요일이 힘들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건 내가 미래를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금요일에는 출근길부터 이미 퇴근 후의 주말을 살고 있느라 기분이 좋고, 월요일엔 앞으로 펼쳐질 한 주의 일정과 거기에 주렁주렁 딸려있는 걱정과 부담을 태산처럼 짊어지고 있으니 피곤할 수밖에. 탈옥을 꿈꾸는 빠삐용처럼 마음속으로 평일을 하루씩 지워가며 살았다. 주말까지 D 마이너스... 유레카다. 이 깨달음이 나의 월요병을 고쳐줄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도 당장 오늘치 걱정은 아니니까 패스다. 오늘은 어린이날, 오월은 푸르고 나도 계속 자란다. 무럭무럭. (20220505)


keyword
이전 08화생의 최전선,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