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라는 세계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가 내친김에 끼적여 본

by 박기복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있다. 서점에서 종종 마주쳤음에도 육아서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던 책이다. 영화 '우리들'을 만든 윤가은 작가가 이 책을 보고 떼굴떼굴 굴렀다고 에세이에 적어놓은 것을 보고서야 읽기 시작했는데 나 역시 어린이들의 귀여움에 취해, 읽는 도중 깔깔대거나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한 번에 다 읽어버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독서를 멈추기도 한다. 아껴가며 읽고 있다는 소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빛깔로 사랑스럽고 어린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작가의 태도는 한없이 존경스럽다. 그들이 함께 있는 풍경을 상상하면 그 속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다가 의식의 흐름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매일 마주하는 중학생들의 세계로 이어진다.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이번 주 지필평가를 치르는데, 아이들이 공식적으로 치르는 인생 '첫'시험이다. 초임 때 이후로 십수 년 만에 중학교에 다시 근무하게 되었던 작년, 시험 날 아침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아이들 앞에서 소리 내서 잘 웃지 않는 편인데 (짐짓 근엄한 척이 몸에 뱀) 참지 못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던 이유는 그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였다. 너무 떨려요라고 말하면서 말 그대로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고등학생들이 시험을 얼마나 나태하게 치르는지를 숱하게 봐온 나로서는, 첫 시험을 앞두고 떨며 긴장하는, 그리고 그 긴장과 떨림을 숨길 줄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귀여워만 보였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버렸던 것 같다. 귀여움을 느낀 대상을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작년에 중학생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결론은 '때때로 귀여운' 그들이 좀처럼 '참지 않는다'라는 사실이었다. 규칙을 중히 여기는 아이는 준법정신을 타인에게까지 확장시켜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일일이 신고하기 바쁘고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는 참지 못하고 끊임없이 장난을 치면서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스스로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을 놀리거나 부당하게 대접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지 않고 사과를 요구하고 교사의 중재를 원한다. 어떤 아이는 화가 나면 참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SNS에 저격글을 올리고, 어떤 아이는 아프면 참지 않고 학교를 안 오거나 늦게 오거나 중간에 집에 간다. 좋으면 꼭 와서 좋다고 고백을 하고 지루하거나 불편한 티를 내는 일도 참지 않는다.


마냥 참는 것이 미덕은 아니지만 인내의 가치가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나 좀 놀랍기도 했다. 고등학생만 되더라도 자기 선에서 참고 수습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중학생들의 이런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하긴 2007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1997년에 대학에 입학한 내가 어찌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작년엔 코로나로 인해 원격 수업을 꽤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신고로 담임이 교실에 출동할 일은 많았고 그런 식의 소동에 지쳐 고개를 흔들고 혀를 차다 보면 사고는 확장되어 참지 않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한 아찔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구석은 있다. 이들은 아직 중학생이고 곧 자랄 것이다. 참아야 될 일을 가려내 참을 줄도 알게 될 것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는 법도 배울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중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이 극히 가변적인 존재라는 것을 자주 느끼는데 그 사실이 환한 희망처럼 느껴진다. 고등학생들과 생활할 때의 좌절은 내가 마주 앉은 이 아이는 절대 변하지 않겠구나 확신이 드는 데서 오곤 했으니까. 중학생들은 말랑말랑하게 생동하는 존재다.


고등학생들과 오래 생활하다가 중학생들과 지내는 작년부터 종종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입시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이미 기가 질려버린 아이들, 좌절과 무기력을 배워버린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지금 팔팔 살아 숨 쉬는 눈앞의 아이들과 겹쳐진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절대 놓치지 말기를, 삶의 방식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고 공부 말고도 많은 것들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저마다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바라본다.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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