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다이어트
날씬한 몸을 선망한다. 일단 보기에 좋아서다. 같은 옷도 날씬한 몸에 걸치면 테가 다르다. 평소보다 체중을 감량하면 한결 몸이 개운하고 가볍다. 바지통이 헐렁해서 기분이 좋고 앉아있어도 배가 접히지 않아 괜히 당당하다.(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선망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날씬한 몸이라는 이상과 식탐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잦은 비율로 이상이 패배한다. 현실을 이기지 못한 나는 빈번한 자괴감에 빠진다. 어째서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는지 한심하지만 어디 나만의 일인가. 다이어트가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이 세상에 그토록 다양한 다이어트 체험기가 존재할 리 없다.
어렸을 때는 말랐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냥 말랐다도 아니고 '삐쩍' 말랐다는 소리는 당시로서는 듣기 싫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떠올려보면 어쩐지 영광스러운 수식어 같기도 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도시락을 2개씩 싸들고 다녔다. 야간 자율학습이 전혀 자율적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점심 도시락을 2교시 후쯤 먹고 저녁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당겨 먹은 후에 저녁 시간에는 매점에서 유일하게 판매하던 사발면을 사서 먹곤 했다. 아침을 먹어야 머리가 잘 돈다는 믿음으로 눈뜨자마자 아침밥부터 먹었고 밤 10시에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밤참도 챙겨 먹었으니 하루 5끼를 먹은 셈이다. 공부 말고는 중요한 게 없던, 밥심으로 공부한다고 믿었던 고3 때의 일이다. 5끼를 먹은 것에 비하면 그래도 양호한 결과였나. 입학 당시보다 5~6킬로쯤 무거워진 상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만 가면 남자 친구도 생기고 살도 자동적으로 빠지는 줄 알았던 순진한 나는 어영부영 대학교 2학년 봄을 맞이했고 축제가 만발하던 그 봄, 일생일대 각성이 일어났다. 방문 배경은 통 생각이 안 나지만 어느 여대의 축제 구경을 갔던 날이었다. 매일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 둘과 함께였다. 워낙에 지리 감각이 없는 데다 남의 캠퍼스니 당연하게도 정확한 장소는 생각나지 않지만, 계단이었고 음악 공연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계단의 꼭대기 그러니까 뒷좌석에 앉아서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운 늦은 오후에 계단을 채운 학생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서넛씩 나란히 앉아 공연을 구경하는 풍경은 평화로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 가만 보자. 이 학교 애들은 다 날씬하잖아?
남녀공학인 우리 학교에서는 교정을 허구한 날 누비면서도 자극이 없었는데(미안합니다) 여기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은 어쩜 이렇게 다 이쁘고 날씬한 걸까, 그날 나는 그들과 나를 번갈아 떠올렸고 날씬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날씬해져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날 구경을 마치고 나온 우리 셋은 식당에 가서 냉면을 먹었는데 음식이 나온 순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양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아, 이 동네는 이만큼이 일 인분인가 봐. 우리는 조용히 쑥덕였고 그때 한 친구가 나직이 뱉었던 대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거 우리 동네에서 고기 먹고 나오는 후식 냉면 사이즈야." 당시에는 핫도그 표면에 감자를 잘게 직육면체로 썰어 붙여서 튀긴 일명 '만득이 핫도그'가 유행이었는데 그마저도 우리 학교 앞의 그것과는 한참 달랐다. 덕지덕지 붙어있어야 할 감자가 여백의 미를 자랑하며 몇 개 붙어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량이 우리 학교 앞과 이렇게 다르다니. 그래서 얘네가 이렇게 날씬한 건가? 그날 내가 경험한 것은 말 그대로 '문화충격'이었다.
그날의 각성을 계기로 생수와 뻥튀기를 먹어가면서 살을 뺐다. 그 결과 스스로 정한 이상적 체중에 도달했으니 성공적인 다이어트였던 셈이다. 살이 빠지는 시기와 절묘하게 맞물려 내 삶에는 많은 이벤트들이 펼쳐졌고 이제 와 돌아보면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이상적인 체중은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늘어났고 다시 작정하고 살을 빼 과거 세운 이상적 체중에 도달했을 무렵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했으니 체중과 운명의 상관관계란 굉장히 유의미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판단은 선별적인 정보를 왜곡해서 수집한 나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가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는데 체중에 꽤 집착하게 된 사연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체중을 잰다. 코로나 감염에 대비한 면역력 증강을 핑계로 식탐을 방치했던 지난 2년을 빼고는 아침 체중계에 나타난 숫자는 나의 기분을 좌우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에 해당하는 숫자를 넘어서면 어제 먹은 음식을 탓하고 그 음식을 먹은 나를 탓하고 나의 낮은 기초대사량을, 군살을 만들어내는 나이를 탓했다.
코로나를 틈타 부풀린 체중을 다시 감량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상호가 아니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가 나의 단식 시간이다. 일평생 체중에 집착하며 다이어트를 해온 내가 도달한 가장 합리적이면서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식은 8시간 이내의 식사와 16시간의 공복 유지다. 이렇게 하면 식단을 조절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물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으면 도리없이 살이 찌겠지만 한 끼 정도만 맛있게 먹고 저녁은 간단히 가정식 백반 정도로 먹어주면 체중이 유지된다. 커피와 곁들인 케이크 한 조각이나 샐러드 정도로 저녁을 때운다면 확실한 체중 감량 보장이다.
방학을 앞두고 여러 가지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담임으로서, 업무 담당자로서 수없이 많은 메시지를 받고 보내면서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한 시간 가까이를 달려 번화한 시내로 나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오늘 나들이의 목적은 실은 글쓰기가 아니다. 저녁을 먹지 않기 위함이다. 집에 있으면 유혹이 많으니 좋아하는 공간(책이 가득한 카페)에서 좋아하는 짓(글쓰기)을 하며 살살 나를 달래는 중이다.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 제목이 떠오른다.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202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