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사냥꾼의 건강 관리
일평생 다이어트를 하며 살았다.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체중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쓰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식사량을 조금 줄이거나 저녁 한 끼 정도를 거르는 방식으로 무게를 얼추 유지해 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적게 먹는 것보다 안 먹는 것이 차라리 쉽다. 조금만 먹어볼까 하고 뭔가를 먹기 시작하면 식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걷잡을 수 없어질 때가 잦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공복을 견디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고 그게 간헐적 단식을 하게 된 배경이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공복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물론 완벽하게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야식의 유혹만 뿌리칠 수 있다면 아침은 원래 안 먹기 때문에 16시간 공복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덕분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가면서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나의 식생활이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작년 어느 날 꾸었던 난데없는 꿈에서 비롯되었다. 꿈속에서 남편과 나는 어느 진료실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의사로 보이는 남자는 태연한 얼굴로 우리를 향해 말했다.
“당뇨입니다.” (우리 둘 다에게 해당되어 더 충격!)
다행히도 꿈이었다. 하지만 무척 생생했다. 의사의 목소리가 우렁찼거나 표정이 유난히 심각했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무력감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내가 느꼈던 무력감. 진단이 내려진 순간, 어떡하지? 하는. 하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는. 감정은 참 힘이 세다. 꿈에서 느낀 그 무력감은 나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혈당이 높아져서 관리 차원에서 약을 드시고 계시는 게 신경이 쓰였을 수도 있고 부쩍 늘어난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 꿈의 연유가 어떻든 걱정은 이미 뿌리를 내렸다. 결국 혈당 측정기를 샀다. 혈당을 재보니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식습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경각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체중계에 찍힌 숫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가볍건 무겁건 내 몸 안을 돌고 있는 피가 어떤 상태인지가 중요했다. 평소 식습관에 자신이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나는 맛집 사냥꾼이었다. 한 달 가스비가 1만 원도 나오지 않는, 배달 음식과 외식이 일상인 식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겁도 없이.
이제라도 내 몸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수시로 발가락 끝을 찔러서 피를 내고 혈당을 쟀다. 식후에 얼마나 혈당이 오르는지,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는 얼마나 걸리는지. 초반에는 하루에 4~5번을 측정하기도 했다. 다행히 발가락이라서 참을만했다.
먹은 음식과 혈당측정기에 찍힌 숫자를 기록해 가면서 신체의 변화를 관측한 결과는 사실 뻔한 것이었다. 밀가루가 독이라는 것. 밀가루 음식을 먹고 나면 혈당이 확실히 더 높이 올랐다. 같은 탄수화물임에도 밥을 먹은 것과는 달랐다. 거기에 단 것을 먹으면 수치는 고공행진을 했다.
특히 야식을 먹어버린 다음날 아침의 공복 혈당 수치는 처참했다. 잠이 깬 순간 이미 뱃속이 그득하다는 느낌이었으니 사실은 공복도 아니었던 셈이지만. 단백질을 먹어야겠구나 싶어서 손쉽게 삶은 계란을 즐겨 먹었다. 안 먹던 샐러드를 새삼스레 사다가 먹기 시작했던 것도 그쯤이다.
이렇게 무려 두 달을 성실히 기록했었다. 두 달 바짝 적고는 한동안 처박아두었던 수첩을 이 글을 쓰려고 펼쳤다. 밀가루만 피하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안심이 담긴 메모가 눈에 띈다. 피식 웃음이 난다. 어떻게 이런 깜찍한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밀가루를 피하는 것은 대낮에 태양을 피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인데.
아마도 기록을 멈춘 건 이만하면 됐다 싶었기 때문일 거다. 밀가루 음식만 피하면 혈당 관리는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밀가루 음식이라도 아주 조금만 먹으면 혈당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타협으로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와 흥청망청의 사이를 넘나들었던 것 같다.
아침마다 영양제는 챙겨 먹으면서 정작 식습관에는 문제가 많았던 것이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밀가루에게 지고, 언젠가부터는 이기려고도 안 했다는 것이 내심 분하다. 그나마 다행한 사실은 다시금 밀가루에 대한 적개심을 일깨울 수가 있었는데 부쩍 잦아진 식곤증에 대해 탐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징그럽게 더웠던 여름에야 그렇다 쳐도 선선해진 후에도 식사 후에 심하게 졸음이 쏟아지기에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서 또 한 번 실험하는 마음으로 채소를 잔뜩 사다가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 보았다. 놀랍게도 전.혀. 졸리지가 않았다. 너무도 또렷한 차이였다. 채소가 몸에 좋다는 말을 활자로 읽는 것과 육체로 느끼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그 차이에 관해 호들갑을 좀 떨어보려고 애초에 목차에 넣었건만, 처음 쓴 글은 의도와 달리 참회록에 가까웠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예약해 정밀한 점검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내시경과 복부초음파까지 앞둔 염려가 더해져 글이 온통 '그때 그러지(=그거 그만큼 먹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로 가득해 쓰면 쓸수록 기분이 침울해졌다.
싹 지우고 새로 쓸 수 있었던 것은 공상에 기댄 바다. 내 안에 ‘딸에게 몸에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엄마’와 ‘입에 맞는 음식들만 양껏 먹고 싶은 어린 딸’이 공존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봤다. 가족드라마 속의 엄마와 딸처럼 딸이 엄마의 진심을 이해하고 달라지는 서사라면 좋으련만.
한편, 맛있는 음식을 흥청망청 먹었던 지난 식생활이, 남는 거 없이 지나가버린 연애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영 틀려버린' 즐거웠던 만남. 맛집 사냥 다니던 그때 얼마나 즐거웠니. 그러니까 굳이 과거를 참회하고 부정할 것까지야 있나. 그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는 애틋한 생각도 들다가.
한때 식단과 혈당을 성실하게 기록했고 초심을 잠시 잃었을망정 이제라도 다시 잘해보려는 이 마음이 얼마나 귀한가! 불과 며칠 전까지 밤늦게 생라면도 뽀개 먹고 점심밥 대신 떡볶이, 햄버거도 사다 먹고 했지만 어제라도 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채소를 담아다가 냉장고에 고이 넣어둔 그 마음도 얼마나 귀한가! 떡볶이는 샀어도 일부러 몇 개는 남기고, 이것저것 먹어도 다디단 도넛만큼은 절대 참는 이 마음은 또 어떻고! 하는 생각에 이르면, 잔소리 한 바가지 퍼부으려다가도 '너야말로 퍽 속상할 텐데.' 싶어 “내일부터 잘하자”정도로 넘어가는,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전인권 님이 그랬던가. 혀의 쾌락에만 충성하던 시절은 즐겁고도 찬란했다. 다만 위장의 노고도 염려하는 귀한 새 마음도 내어 보기로 하자. 밀가루 말고 채소로 점심 한 끼 든든히 먹으면 이 좋은 가을 오후를 식곤증 없이 영양가 있는 공상을 하며 누릴 수 있으리니, 채소 만세다.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