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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랄라 Oct 26. 2020

꽃과 나무, 생명과 우리

스웨덴의 자연

스웨덴은 자연이 좋은 나라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도시 주변과 외곽에 무한히 펼쳐져 있다. 자연은 사람이 만든 유적지나 예술품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살아 움직인다. 계절에 맞추어 그 아름다움이 달라진다. 봄은 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그 색이 다르지만 모두 다 아름답다.

 


스웨덴에 와서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꽃집에 잘 정리된 꽃들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예뻐 보이는 이름 모를 들꽃에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 무드 없고 딱딱한 중년의 아줌마가 스웨덴의 봄꽃에 빠져 사진을 찍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나를 위해 피워낸 꽃도 아닌데 멋드러지게 자신들을 피워 낸 이 생명들이 소중하다. 이 아이들이 품은 향을 전할 수 없어 아쉽다.

무수히 펴 있는 자잘한 들꽃들! 자세히 들여다보니 넘치게 충분하다.

<모두가 다르지만 하나같이 아름답다>


나무


스웨덴의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오늘 이 하루를 소중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둥치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인생사 고단한 이들의 피곤하고 고르지 못한 숨결을 다채로운 푸르름으로 감싸 안는다. 신록의 여리운 빛, 깊은 푸르름, 무르익은 가을의 아쉬움, 그리고 겨울의 황량함이 우리의 인생에 말을 걸어온다. 가지가 꺾여도, 껍질이 벗겨져도, 장난꾸러기 꼬마들의 재잘거림과 연인들의 속삭임, 가족들의 사랑의 시간들이 그와 함께 흘러간다.  그 특유의 풍성함과 여유로움은 지나가던 소낙비도, 태양의 작열감도 모두 품어 버리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 세월속에 서 있다>


생명


좋은 인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각자의 길로 떠나가는 것처럼 자연에서 인간의 존재는 손님 그 이상이 될 수 없는 듯하다. 주인공은 나그네처럼 가며 오며 잠시 방문하는 우리가 아니라 이 자연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수많은 생명들이다. 매우 당연한 사실인데도 자주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말없이 가르쳐 주는 이 자연의 모습이 스승을 닮았다. 다그치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그래! 이 곳의 주인공은 생명을 품고 이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들구나...

항상 자리를 내줘서 고마워!

<자리를 내어줘서 고마워>


우리


바이러스로 모두가 힘든 이 시기, 우리 가족도 자연에게 위로를 받는다. 저녁 식사 후, 공원을 조용히 산책하곤 하는데, 깔끔히 정리된 산책길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좁은 길, 애초에 공원 길로 계획되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하나 둘,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자연 산책로가 색다름을 준다.

 

가족이 산책을 하며 나누는 대화는 매우 다양하다.

뿌리가 뽑혀 쓰러진 커다란 나무 뒤로 어린 나무가 연약히 서 있다.

"엄마 나무가 쓰러져서 아기 나무가 슬퍼하는 것 같아."라고 얘기하니  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바로 우리 남편,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

"나무 종이 다르잖아."

그러면 다 같이 웃고 또 다른 화제를 꺼내 든다.

 

아이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엄마 U.F.O 가 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딸에게 곧이어 남편이

"응, 저 구름은 적란운이라는 거야. 따라 해 봐! 적. 란. 운!"

<U.F.O를 닮은 적란운>

세상을 0 아니면 1로 본다는 수학에 업을 둔 자연계 남편과,  책을 좋아하는 인문계 와이프, 그리고 상상력이 뛰어난 딸아이의 대화는 항상 평행선을 그으며 진행되지만 자연 안에서는 그것도 유쾌한 재미와 여유를 준다.

 

딸아이도, 남편도, 때로는 자잘한 수다를 떨며, 때로는 묵묵히 걸어가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할 테지만 그 조용한 산책길을 걸어가는 우리 세 가족의 공통점은 이 저녁 산책을 무엇보다 즐긴다는 데 있다. 잘려 나간 나무 그루터기의 나무테를 세는 남편과 그루터기 안에 마법의 힘을 가진 초록뱀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는 딸아이가 바라보는 나무의 그루터기는 각자 다른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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