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song 꽃song Nov 29. 2024

잠깐 사이의 행복

 


『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써 둔 습작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아이들이 잠깐 문구점에 간 틈을 타서, 가수 이문세의 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을 틀어 놓았다.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 높여놓고, 손으로 걸레질을 하면서 큰 소리로 따라 부르다가 나도 모르게 옛 추억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




 결혼하기  남편이 풍물공부를 하겠다고 임실 필봉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때아닌 봄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눈이 내리다니. 당장 그에게  달려갈 수도 없는…….

 눈앞에 펼쳐지는 축복 같은 순간을 그와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켜놓은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대도
그대  사랑받는 난 행복한 사람, 떠나갈 땐 떠나간대도
어두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그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나는 이 노래 가락중에서도 특히 '창밖을 보다가'의 대목에 이를 때면 늘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하였다.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세상은 어느새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아아, 그때 하얗게 내 눈앞에 쏟아지던 눈! 눈! 눈!




 눈앞에 펼쳐진 듯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옛 추억 속에 흠뻑 젖어 있노라니, '딩동!'하고 벨소리가 울렸다. 순간, 까마득한 몇 천 광년 거리의 어느 세계에서 이제 막 이승으로 돌아온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OO아, 이 노래 정말 좋지? 그렇지? 엄만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


 문을 열뛰어 들어오는 아들을 향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무슨 영문인 줄도 모른 채, 아들 녀석은 숨도 안 돌리고 내 말에 시원스럽게 대꾸해 주었다.


"엄마, 난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는 다 좋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