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써 둔 습작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것처럼, 집집마다 아침을 맞이하는 풍경 또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하루 중에서도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나는 시간은 아마도 아침이 아닐까 싶다.그 짧은 시간 동안 펼쳐지는 각 가정의 아침풍경에는 저마다 그려내는 그들만의 삶의 모습이 담기게 된다.
우리 집 또한 여느 집처럼, 출근준비와 등교준비로 부산하게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우리 집만의 독특한 아침풍경을 그리며 살고 있다. 5시 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두 개의 자명종과 두 개의 핸드폰을 다 누르고나서야, 우리 집은 아침 기지개를 켠다. 온 집안에 묻어있던 졸음을 몰아내며 내가 바쁘게 움직일 때면, 뒤따라 일어난 남편과 아들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서서히 풍욕 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풍욕을 해온 남편의 아침일과에 아들이 함께 한 것은 지난겨울부터였다. 풍욕(風浴)은 몸속의 독소제거에 아주 큰 효과가 있으며, 옷을 벗고 자연상태의 공기를 피부에 접촉시킴으로써 모공을 통하여 피부가 호흡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한다. 남편은 아토피성 피부를 앓고 있는 아들에게 풍욕을 제안했고, 아들은 선뜻 아침 풍욕에 동참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아침 풍욕이 지금은 아침을 여는 우리 집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매일 아침"OO아, 풍욕 하자!" 하고 아들을 깨우는 남편의 기상나팔에 아들은 반쯤 눈이 감긴 채로 옷을 벗은 후, 곧장 구령에 맞춰 풍욕을 따라 한다. 부모 자식 가릴 것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가족들끼리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 아침마다 부자간에 맨 살을 맞대고 풍욕을 하는 광경은 얼마나 따뜻하고 복된 모습인가. 바쁜 와중에도 나는 가끔씩 장난기가 발동하면 풍욕에 열중하고 있는 두 남자의 탱탱해진 고추를 살짝 건드려 보곤 한다. 그들의 질겁하는 척하면서도 싫지 않은 듯한 표정과 반응이 재미있어서이다.
풍욕을 함께 하면서 남편과 아들은 둘도 없는 동지가 되었다. 잠도 한 방에서 자기 시작했고, 한동안은 새벽마다 배드민턴 강습을 함께 받기도 하였다. 주말에 등산을 가는 날이면 아들은 아빠 옆에 바짝 붙어 걸어가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이야기꽃이 끊이지 않는다. 엄마밖에 모르던 녀석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어 나는 가끔 속 좁은 엄마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머지않아 자연스레 사춘기를 맞이하게 될 아들을 생각해 보며, 지금의 돈독한 부자관계가 그때쯤이면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모습이 오랫동안 변치 않기를 바라게 된다.
요즘은 구구단을 배우고 있는 아들을 위해 풍욕에 따른 구령도 암송으로 바뀌었다. 2단부터 9단까지 한 단 씩 이어지는 아들의 암송을 신호로 이불을 걷었다 덮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암송이 모두 끝나면 풍욕도 마무리된다. 덕분에 아들의 구구단 암송실력은 잠결에도 안 틀리고 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다.
풍욕이 끝나고 아이들의 등교준비가 한창일 때,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출근길에 오른다. 현관입구까지 따라 나온 남편과 인사를 나눈 후 문을 나서면, 아이들은 한 번이라도 더 나를 안아 보고 싶어 서로 티격태격하며 내 뒤를 따라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누가 누가 엄마를 독차지하나'시간이 된다. 아들 녀석은 숫제 내 얼굴을 자기 얼굴 가까이에 가져다 놓고 뽀뽀세례를 퍼붓는 것으로 누나가 차지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 선 후에는 어느 멜로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애절한 작별인사가 이어진다. 문이 닫히고 있는 그 잠깐 사이, 엄마손 한번 더 잡아보고 싶은 아이들의 손은 벌어진 틈으로 들고나기 바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움직일 때까지 몇 초 동안은 또 어떤가. 얼굴이 보이는 조그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입을 내밀어 뽀뽀를 하지 않나, 그것도 안 되겠는지 손을 들어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질 않나, 온갖 종류의 사랑 표현들을 앞다투어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유별난 인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은 내가 딱 문을 나서는 순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꼭 조심해서 운전하세요!" 하고 종달새처럼 노래한다. 아파트 건물을 돌아 주차장에 이르면 딸아이는 그새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쉬운 듯 남겨 둔 마지막 인사를 내게 날려 보낸다.
엄마. 오늘도 즐거운 하루!
누구보다도 성대한 환송을 받은 나도 최대한 싱싱하고 유쾌한 목소리로 화답해 준다
OO이도 즐거운 하루!
우리 모녀의 아침인사가 상큼한 아침공기를 타고 아파트 숲에 울려 퍼지는 것으로 우리 집 아침풍경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바라보면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그림처럼 하루종일 마음 한복판에환하게 걸린 채 웃고 있다.
<참고 >
*풍욕(風浴)은 말 그대로 바람을 이용하여 목욕하는 것으로 프랑스의 의학자 로브리 박사가 창안한 것으로 로브리요법 또는 대기요법이라고도 불린다. 풍욕의 시작은 로브리박사에 의한 것이지만 그 후 일본의 온대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도록 개량되어 니시건강법으로 소개되면서 국내의 자연 건강법 연구가들에 의해 알려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