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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song 꽃song Dec 17. 2024

조개껍데기 브로치

『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써 둔 습작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아들 녀석이 출근하려던 나에게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감추었던 손을 내밀었다. '엄마, 사랑해!'라고 쓰인 하얀 조개껍데기 브로치였다. 조개껍데기에 뚫려 있는 조그만 구멍을 이용하여 조개껍데기와 브로치 핀을, 실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순간, 며칠 바닷가에서 주워 조개껍데기를 깨끗이 씻어 말린 , 어느 것이 제일 예쁘냐고 물었던 생각이 났다.

 깜짝 선물에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며 아들이 한마디 보태었다.


"엄마, 이 걸 만드느라 바늘에 얼마나 찔렸는지 몰라요. 실로 엮는 데만도 한 40분은 걸렸을 걸요."


 너무너무 멋지다고 호들갑을 떨며 가슴에 채우고 거울 앞에 섰다. 뒤로 보이는 아들 녀석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학교에 가서 자랑할 것이라며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출근길에 올랐다. 운전하는 동안 자꾸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난히 애정표현이 풍부한 아들 녀석 때문에 요즘 혼자 웃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엊그제는 저 혼자 무얼 하다가 갑자기 내 옆으로 오더니 '짱'타령을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미모짱에다가, 미소짱에다가, 맘씨 짱에다가, 요리짱에 다가, 수필짱에다가……, 아휴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멋진 게 많아?"


그 말에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진 나도 그냥 말 수 없어 금방 답장을 보냈다.


"아휴, 우리 아들은 또 어떻고! 만들기 짱에다가, 종이접기 짱에다가, 로봇제작짱에다가, 거문고 연주 짱에다가, 검도짱에다가, 달리기 짱에다가……,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네!" 우리는 서로의 칭찬에 정말로 황홀해져 한참을 깔깔대고 웃어댔다.




 나는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가정주부로서나 엄마로서 번번이 직무유기를 하는 빵점짜리 엄마다. 솔직히 말하면 집안 살림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 '바빠서'라는 말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 미룰 수 없는 최소한의 집안일만 재빨리 마무리하고 난 후, 무언가 특별한 궁리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종종 남편으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아들만큼은 언제나 내게 후한 점수를 준다.


 모처럼 마음을 내어, 새하얀 접시에 참치볶음밥을 담고, 예쁘게 계란을 부쳐 덮은 후, 케첩과 통깨 하트모양이라도 그려주는 날에는, 세계최고의 일류 요리사나 들을 수 있는 온갖 찬사를 내게 쏟아붓는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수시로 내게 다가와 얼굴에 온통 뽀뽀그림을 그려대며 "아휴,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또 어디 있어?"라고 말하여 내 입을 귀에 걸쳐놓고야 만다. 

 외할머니가 보내주신 음식을 '맛있다! 맛있다!'노래 부르며 먹다가 "아무래도 외할머니가 엄마의 요리솜씨를 물려받았나 봐요."하고 결론짓는 바람에 입 속에 들어있는 음식을 다 내뿜은 적도 있었다. 

 또 한동안은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명랑한 겨?"하고 틈만 나면 '명랑한 엄마'라고 불러서 명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 적도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들에게만은 모두가 최고로 둔갑하는 것을 보면 아들과 나는 아무래도 찰떡궁합인가 보다.




 아들 녀석 생각에 입이 다물어질 새도 없이 학교에 도착하여, 힘차게 인사를 하며 교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조개껍데기 브로치를 내미니, 교무실 안은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볼수록 흐뭇한 조개껍데기 브로치 덕분에 하루종일 입단속하기 힘든 하루였다. 그러나 오늘 하루쯤은 아들자랑에 팔불출 노릇을 한다 해도 큰 흉은 아니지 않을까? 오늘은 어버이날이고 나는 우리 아들의 자랑스러운 엄마니까 말이다.

                                                                                                               (2003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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