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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물

by 숲song 꽃song


끼익-


황색점등임을 확인하고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내 차 앞으로 뒤따라오던 닭장차가 잽싸게 끼어들며 멈춰 선다. 급 제동에 놀란 닭들이 닭장 안에서 서로 뒤엉켜 있다가 하나 둘 몸을 추스르며 철망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철망 안에 갇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답답하게 조여드는 기분이 든다. 먼 거리를 출퇴근하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모습이건만 오늘따라 유난히 닭들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부슬부슬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려서일까? 후줄근한 몰골을 하고 끊임없이 두리번대는 닭들의 눈이 한참 동안 내 마음을 붙들어 놓는다.

어렸을 적, 집 앞마당을 누비고 다니던 천방지축 시골 닭들의 모습은 얼마나 활기차고 정겨웠던가? 마당에서 키우던 닭들 결국엔 차례차례 온 가족의 보양식이 되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적어도 더불어 사는 한 집안식구로 여겼었다.


상업적인 양계를 하는 축산농가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닭들의 처지는 옛날과는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양계장의 닭들은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삶이 철저하게 인간들의 손익계산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먹고 먹히는 동물세계의 엄연한 질서야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만큼만 얻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 인간의 탐욕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마저 무너뜨려 삶의 터전까지 위태롭게 몰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동물들도 삶을 누릴 권리, 번식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먹고 입는데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생명을 아낄 줄 알았다던 라코타 인디언들의 삶의 자세는 인디언들의 멸망과 더불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 걸까?


얼마 전 잡지에서 읽은 '방귀 세'이야기는 인간의 환경파괴가 이 정도로 심각해졌는가 싶어 미래에 대해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목축업이 주요 산업인 뉴질랜드에서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소나 양과 같은 가축에 방귀 세 도입을 추진하다가 축산농민의 반대로 백지화되었다고 한다. 풀을 뜯어먹고 사는 가축들이 방귀를 뀌면 얼마나 뀌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뉴질랜드의 가축들이 뿜어내는 메탄가스 량은 뉴질랜드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우리가 늘 마시고 사는 공기마저 산소 캔으로 둔갑하여 시판되기 시작했다더니, 급기야 사육하는 가축들의 방귀 세까지 고려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물려주신 조상님들이 내려다보신다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

닭장차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노라니 아이들에게 즐겨 읽어 주었던 권정생의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동화가 떠오른다. 이야기를 읽어줄 때마다 아이들이 자기 목숨처럼 남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뭇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를 소망했었다.


풀꽃 한 잎을 뜯어먹는 일조차 너무 미안하여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돌이 토끼. 보리수나무 이슬과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볕 조금을 마시고 산다는 하느님의 말에 자신도 그런 것만 먹고살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른다. 이 말에 하느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돌이토끼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오길 애타게 기다리는데도 사람들은 기를 써가며 남을 해치고 있다면서 돌이토끼얼굴에 이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하느님의 눈물이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이면,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숙연해지곤 했었다.


닭장차위로 제법 굵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화 속의 하느님의 눈물과 오버랩되는 순간 초록 점등이 켜진다. 닭장차를 뒤따르며 생각은 저녁 찬거리로 이어진다. 뒤이어 비가 내린다는 생각에 '치킨에 맥주 한잔?'이 습관처럼 떠오르려다 이내 수그러든다. 비는 내리고 생각은 꼬리에 물고 이래 저래 숙연해지는 퇴근길이다.




<참고>

전문가들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꼽는 게 메탄가스이다.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에 미치는 영향이 21배다 큰 데다 산업화 과정에서 다량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나 염소 같은 반추동물(되새김동물)이 곡물을 소화시킬 때 메탄가스가 생기는데 이런 동물들이 트림을 하거나 방귀를 뀌면 메탄가스가 배출된다.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한 해 4톤 정도로 승용차 한 대가 내뿜는 온실가스 약 2.7톤보다 1.5배나 많다.
*방귀세: 가축들이 소화과정에서 생성된 방귀를 배출할 때 함께 나오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 메탄가스에 부과되는 세금
*뉴질랜드: 2003년 가축 머릿수에 따라 방귀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려다 축산농민의 반대로 백지화. 최근에는 소에게 특수한 사료를 먹여 메탄 배출량을 줄이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됨. 2022년 농업 환경세(일명 방귀세)를 도입하려다 농업계의 반발로 계속 미뤄지다기 2030년 이후로 연기됨.
*에스토니아: 2009년부터 소에 방귀세 부과하고 있음
*덴마크: 2030년부터 소, 돼지를 키우는 축산농가에 소 방귀세, 돼지 방귀세 부과예정(농업탄소세라는 이름의 세금을 축산농가의 온실가스 배출양에 따라서 2030년에는 메탄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해 톤당 6만 원 정도, 2035년까지 약 15만 원까지 인상예정이라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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