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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인형

by 숲song 꽃song Feb 04. 2025
『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쓴 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그래, 바로 이거야!'

 다가올 딸아이의 생일엔 무언가 특별한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머리를 굴리던 중, 월간잡지를 보다가 우연히 얻어 낸 힌트였다. 과테말라 고산지대에 사는 인디언들 사이에는 '걱정인형'이라는 것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문제나 고민이 생기면 잠들기 전에 인형에게 말한 뒤 베개 밑에 넣고 잔다고 한다. 잠든 사이 '걱정인형'이 주인의 걱정거리나 고민거리를 멀리 내다 버린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 슬그머니 뿌리를 내리는 걱정이 얼마나 고약한 놈인가를 지난겨울, 딸아이를 통해 새삼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토록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딸아이가 발가락에 손톱만 한 크기로 자란 사마귀 하나 때문에 그리 쉽게 무너질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건강하게 잘 자라 준 덕분에 병원 갈 일이 없었던 딸에겐 레이저로 자신의 살점을 지져내는 일은 견디기 힘든 공포였을 것이다.

사마귀 치료 후, 재발에 대한 불안으로 시작된 걱정은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위로의 말로도 속수무책인 지경에 이르렀다. 된서리 맞아 축 늘어진 김장배추처럼 잔뜩 풀 죽은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가족 모두의 고통이었다. 그 걱정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모로서의 대책 없음도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다.


 딸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위로가 될만한 글들을 찾아 헤매다가 '걱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글귀 하나를 만났다. 그것은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 속의 한 대목이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100% 쓸데없는 걱정을 가지고 후회하고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삶의 에너지를 탕진하고 또 몸까지 축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달 만에 딸아이의 마음을 녹다운시킨 '걱정'도 따지고 보니, 거의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해 왔던 걱정들도 마찬가지였다. 


 숲에 들어서면 숲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나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면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자체'를 걱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 왔다. 그로 인해 정작 내게 닥친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숲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일단 그 숲을 빠져나오야 하듯, 어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먼저 걱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했다.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걱정에 휩싸여 몸부림치고만 있었으니 문제는 해결될 리 없고, 걱정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걱정 없는 삶은 행복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하나 복잡한 우리네 인간사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으니 이를 어쩌랴. 분명 행복을 얻는 데에도 삶의 지혜가 필요하리라.

우연히 알게 된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온다는 '걱정인형'은 그런 점에서 삶의 지혜와 행복의 비결을 듬뿍 담고 있는 그들만의 소중한 유산이 아닐까 싶다.


 생일날 아침이 되면 아주 조그만 인형하나를 딸아이 손에 꼭 쥐어주어야겠다. 그리고 과테말라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온다는 '걱정인형'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이 인형은 너의 근심과 걱정을 해결해 줄 '걱정인형'이란다. 앞으로 엄마에게조차 이야기할 수 없는 걱정거리가 생기거든 그 걱정을 이 인형에게 털어놓으렴. 그러고 나서 베개 밑에 넣고 자면 네가 잠든 사이 이 인형이 네 걱정과 고민을 저 멀리 버려줄 거야. 그런 다음날이면 넌 금방 멋진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거란다. 소중히 간직하렴. 너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줄 거야."


                                                                                                    



20화 '걱정인형'을 마지막으로 '옆집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 브런치북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구독과 라이킷, 댓글로 응원해 주신 브런치 스토리 독자님들과 작가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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