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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Bom Mar 30. 2024

UNIT 15. 이미지를 만드는 물건

MONO PROJECT ARCHIVE

어떻게 흘러와 패션업에 관련된 일을 이어오고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별다른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없었던 졸업 학기 즈음 친구가 문득 건너 아는 선배 중 패션 MD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던졌다. 패션은 둘째 치고 MD라는 직업도 몰랐던 당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이 직업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을 은근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이기 때문에 가지는 궁금함도 컸던 것 같다. 그렇게 이미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선배를 만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패션스쿨을 졸업과 동시에 들어갔다.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입사한 첫 회사, 아울렛을 담당한 업무를 배정받았다. 매장 영업시간에 맞춰 매니저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고 매장 시간에 맞춰 일의 시간도 맞춰졌다. 아침 7시부터 출근과 동시에 회의 자료와 매출 파악을 시작해 매장이 문을 닫는 10시 30분까지 사무실에 붙어 있어야 하는 일이 일 년쯤 지속되었을 때 몸과 마음은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도망치듯이 회사를 퇴사하고 쉬면서 관련된 일로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찾았지만 쉽게 다른 분야의 일들이 찾아지지는 않았다. 같은 분야지만 국내 업무와는 거리가 있는 해외 브랜드 관련 일로 자리를 옮겼다. 패션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도 없던 차에 첫 직장의 기억이 강했던 터라 이후로 일을 하면서는 패션업계 자체의 관심보다는 기획 업무 자체에 매력을 느끼며 일의 영역을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며 만들어 왔던 것 같다.


주변의 동료들은 브랜드 이름만 말해도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제품이 대표적인지,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등등 술술 이야기가 나오지만, 나는 브랜드 자체에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간단하게 입어지는 옷들, 가능한 범위에서 좋은 소재 정도에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들을 구매했고 브랜드는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밖으로 로고가 드러난 옷은 지금도 없다.


일로 다루는 패션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위한 많은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뮤즈를 설정하기도 하고 옷을 입으면 이런 이미지로 보일 수 있다는 비주얼 작업에 공을 들인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끊임없이 따라가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돈을 쓰게 만드는데 가장 주도적인 영역 중에 하나기도 하다. 그럼에도 스스로는 그런 것들로는 휘둘려 돈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도 내심 있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적당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브랜드로 꾸준히 입는 브랜드가 ‘단톤(DANTON)’이다. 1931년 프랑스에서 시작한 브랜드인 단톤은 요리사와 레스토랑 직원용 작업복을 생산한 것으로 시작으로 지금의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브랜드의 시초에 충실하게 지금도 실용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무난하고 편하게 입기 좋아 여러 벌의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에서 수입하는 곳들을 이용해서는 너무 가격을 비싸게 판매하고 있어 출장을 가거나 했을 때 사는 편이다. 국내에서는 인기가 꽤 높은 편이어서 비싼 가격에도 품절되는 제품들이 꽤 있다. 프랑스 브랜드임에도 일본에서 인기가 있어서 일본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이 사 오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일단 가격이 세일 기간에 따라서는 절반 가격으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왜 그 브랜드를 그렇게 한국 사람들이 와서 사는지 이해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일본에서는 요즘 나이 있으신 분들이 가볍게 입으려고 사는 이미지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제품을 가지고도 개인이 받아들이는 감흥이 제각기 다르고 소비하는 국가나 문화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패션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패션업은 매력이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표현의 수단이 누군가에게는 외부 활동을 위한 필수품 정도의 개념일 수 있다. 혹은 누군가의 글을 빌려 오자면 배타성 혹은 포용성을 수행적으로 소통하는 매개체*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를 끌어와 장착하고 싶은 패션의 역할에 충실한 고객일 수도 있겠다. 실용적이고 크게 튀지 않는, 그래도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이미지를 입고 싶다. 올 겨울도 내내 몸에 딱 붙어서 매일 입고 있는 롱 코트가 다음 해, 그 다음 해도 내 모양을 만들어주는 물건으로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 프리데만 카릭)



UNIT 15. 이미지를 만드는 물건

NAME.   단톤(DANTON) 베이지 롱 코트

FROM.   프랑스

SINCE.   1931

PRICE.   69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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