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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Bom Mar 30. 2024

UNIT 04. 이웃을 만들어준 물건

MONO PROJECT ARCHIVE

패션지 ‘GQ’ 한국판의 편집장이었던, 지금은 작가로 활동 중인 ‘이충걸’을 통해 2001년부터 잡지에 입문했다. 잡지의 본문보다는 편집자의 노트를 읽고 싶어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난해하게 조합된 단어의 모음들과 뜻이 이해 안 가는 글도 활자를 읽는 자체로 기쁨을 느끼는 때였다.


잡지라는 매체가 주는 시각적 자극은 크다. 글자와 그림이 마구 편집되어 펼쳐진 페이지가 하나의 인상으로 눈에 담기는 경험, 결코 가볍지 않은 에디터들의 글 솜씨와 잡다하지만 잡스럽지 않은 정보의 발견에서 오는 읽는 재미가 있다. 눈으로 읽고 새기는 종이 잡지는 자신들이 표방하는 캐치프레이즈에 따라 종이의 무게와 질감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글자들로 화면을 채운다. 말하고 싶은 방향을 모든 디자인 요소로 뽐 내준다.


잡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매달 신간 잡지가 나오는 날에 맞춰 서점을 기웃거리고 온갖 잡지들을 들춰보는 재미는 정기적인 나의 오락거리가 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비닐로 싸여져 들춰보는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뽀빠이(POPEYE)는 ‘Magazine for City Life’라는 부제가 달린, 카테고리로 굳이 분류하자면 남성 패션지다. 1976년에 시작하여 50살에 가까워지고 있는 잡지다. 오랜 시간 동안 우여곡절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결국 시티 보이를 위한 입고 먹고 사는데 필요한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의 정보를 담고 있다. 시티 보이를 위한 잡지지만, 세상의 모든 도심생활자라고 해석하고 싶다.


잡지에 대한 애정을 뽀빠이로 대표해 적었지만, 1980년에 시작한 브루터스(BRUTUS)를 비롯해 카사 브루터스(CASA BRUTUS), 그리고 2013년 론칭한 안도프리미엄(&PREMIUM)에 이르는 간헐적 수집가적 면모는 잡지에서 빛을 발한다. 지금 말한 잡지들은 모두 일본의 ‘매거진하우스社’의 잡지들이다. 특별히 지금 시대에 말해주면 좋을 생활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뽀빠이를 비롯한 브루터스와 안도프리미엄은 넓은 폭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하나의 테마 안에 묶어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잡지 한 권이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주제로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모아진 잡지들은 책장의 구성에 따라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자리해 있다. 도시와 공간, 거리와 관련된 책들 틈에는 뽀빠이 매거진의 ‘평상시 사용하는 도쿄 안내(普段使いの東京案内)’, ‘이 사람, 저 사람의 도쿄 안내(あの人、この人の東京案内)’, (일본어 표기대로면 저 사람 이 사람으로 해석되는 것이 맞으나 우리나라는 이, 그, 저의 순서가 익숙하다.), ‘우리들의 일본 혼자 여행(僕らのニッポン一人旅)’과 브루터스 매거진의 ‘건축을 즐기는 교과서(建築を楽しむ教科書)’ 등이 같이 연결되어 있다. 직업과 글, 장인에서 공예로 연결된 책장 사이의 ‘이런 일이 있었나(こんな仕事があったのか)’, ‘어른이 되어도 배우고 싶어(大人になっても並びたい)’, ‘그릇의 교과서(器の教科書)’ 같은 것들이 자리한다. 현재를 말하는 잡지지만, 다양한 분야의 내용들 곳곳에 숨겨진 정보들은 여러 책과 책의 맥락을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로 더없이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 9월, 브루터스 편집장을 비롯해 매거진하우스 전반의 콘텐츠에 관여하고 있는 디렉터가 한국을 찾아왔었다. 인사이트 밋업을 연 자리에 참여해 그들의 잡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억에 남겨진 몇 가지 말들이 있었는데,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드는 이들의 마음에 공통되게 남아있는 잡지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관점을 확장시키는 오늘의 질문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잡지를 선택한 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이웃을 만드는 개념의 중간자 역할을 해내는 것. 내가 가고자 하는 일의 방향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정의에 묘한 안도를 느꼈다. 만드는 이의 의도에 충실한 잡지 읽기를 하고 있는 나는 곳곳에서 주는 정보들을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두어 출장이나 여행 때마다 참고하여 내 취향으로 재편집된 리스트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나의 방식으로 이웃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발을 디딘 도쿄의 허름한 야끼카레 가게에서 주문한 생맥주 한 잔과 카레 한 그릇. 인심 좋은 마스터의 인상이 기억에 남아, 도쿄에 갈 때마다 한 끼는 꼭 거기에서 먹는다는 룰을 만든다. 일방적인 나의 내적 친밀감으로 쌓인 이웃이지만 그렇게 8년의 시간 동안 1년에 3~4번을 만나게 되는 이웃이 된다. 내 결에 맞는 음악과 영화, 책을 골라주고 갈만한 미술관과 밥집들을 모아 알려주는 모음집 속에서 쏙쏙 뽑아내는 재미가 있다. 일상에 나로 살아가는데 심심하지 않게 이웃을 만들어두는 쓰임으로의 잡지다.



UNIT 04. 이웃을 만들어준 물건

NAME.   뽀빠이(POPEYE)

FROM.   일본

SINCE.   1976

PRICE.   950円(국내 판매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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