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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02. 2023

재촉을 그만두라는 재촉이 필요한 순간

목적과 행동의 괴리


다시, 운동 3일 차. 내리막길을 보통적인 속도로 뛰어 내려갔다. 평지가 아니다 보니 온전한 내 의지보다도, 내리막길이 나의 뜀을 멈추지 않게 했다. 뜀을 멈추기 위해선 무엇보다 ‘멈추겠다’라는 나의 결정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결정하지 않으면 그저 뛰는 것이다. 평지가 나올 때까지, 나를 미는 힘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또는 내가 버틸 수 없을 만큼 너무 힘들어질 때까지.



오늘은 유독 내리막길 도중에 사람들이 많았다. 두 명이서 산책하는 모습이 중간중간에 존재했다. 나는 조금 거슬렸다. 그 사람들 사이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 내리막길을 쉬지 않고 달렸다. 사람이 없는 곳이 보일 때까지. 사람들의 말소리가 옅어져 갔고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넘기며 휘잉- 소리를 냈고 내 심장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쿵쾅쿵쾅, 거세게도 두드렸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속도를 줄였고 이어폰 한쪽을 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2분 지났으려나, 조금 진정된 몸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 음악과 함께 또 한 번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의 바로,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속도를 늦췄고 두통이 심해짐을 온몸으로 느꼈다. 뇌가 뛰는 느낌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래도 오르막길은 기어이 올라갔고 앞의 벤치를 그저 지나갔다. 앉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제 다시 내리막길일 테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도중,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아픔은 기절 전조 증상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그 내리막길에서 잠시 주저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머리를 숙여 피가 빠르게 순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쭈그리고 앉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내 뒤의 풀들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들은 바람에 아른아른 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나에게 빨리 뛰라는 재촉을 가했다. 내 주변은 모두 뛰고 있음을 보았으니까. 정말 나도 모르는 새에.


이 재촉은 바람에 날려 한 순간에 스쳐갔고 덩그러니 남은 나는 생각했다. 힐링을 위해, 내 몸을 위해 마련한 순간에도 나는 나의 습관을 기어코 가져왔구나. 실컷 달렸음에도, 정말 성실히 했음에도, 더 달리라고, 더 성실하라고 재촉하는 습관. 내 상태는 고려하지 않는 이 가혹은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예전에도 느껴본 이 익숙한 두통의 증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그럴수록 나는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아서 빨리 벤치가 있는 곳으로 가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벤치에 앉아 머리를 다리 쪽으로 숙였다. 그렇게 몇 분간 앉아 세상을 거꾸로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던 뇌는 점차 움직임이 줄어들었고 이내 오랜만의 운동으로 인한 근육통 같은 얼얼함만이 남아있었다. 뒤따라온 엄마에게 방금 내 상황을 공유했다. 그리고는 재촉(주저앉아 스친 재촉과 사람들로 인해 내리막길을 쉬지 않기로 한 재촉)의 목적과 지금 누리고 싶은 것의 괴리를 깨달았다.


재촉은 목적을 가진다. 인간이 살아가며 가지는 목적들을 실천하게 떠미는 목적. 나 또한 마찬가지로, 목적이 있으니 재촉을 할 수밖에 없다. 재촉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재촉을 가하는 순간, 쉼이 필요한 순간에 쉴 수 없게 된다. 이 재촉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나에게는 운동)을 만들었음에도 습관화된 재촉은 불쑥 튀어나왔다. 내 상태는 무시되면서. 그런데 여기서 재촉의 목적은 무엇인가. 재촉은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 같은 운동의 순간에서 내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여유, 자유, 건강, 힐링,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이것들을 이루기 위해 재촉이 필요한가? 나는 오히려 이때는 없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습관이 된 평소의 재촉은 정말 습관이라 나왔을 뿐, 그때 나에겐 정말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재촉이라 함은 내가 누리고 싶은, 느끼고 싶은 것들(여유, 자유, 건강 …)을 위해 평소의 재촉을 미루라는 재촉이었다.



내 멈춤의 동력은 오직 내 상태에 대한 판단이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그림자가 아니라. 내가 내 상태를, 기분을, 생각을 느끼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마음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정말 흐르는 대로 살아지고, 결국 남는 건 아픔과 목적의 허무함뿐일 테니. 이 마음을 가졌다면 나는 그 내리막길을 뛰는 중에 멈춤을 택했을 거다. 주변 사람들의 존재에 좌우되지 않고서.



내가 지녀온 일상적인 재촉(공부에 관한 불안에서 파생되는 것)은 그 순간에는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저 나의 목적에 알맞은 행동이, 나에게 최적으로 맞추는 모습이 필요했음을 오늘 밤, 아직도 조금은 얼얼한 뇌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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