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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별 Oct 08. 2023

감 따라 감

하고 싶은 것부터 해도 충분하다는 것


내가 나 자신을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은 삶에서 정말 놓쳐선 안 되는 것이다. 나를 믿으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 연결고리에 대한 이야기도 오늘 풀어볼 테지만,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나를 믿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 오늘은 이 물음에 답을 내리려 한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조금 과장을 보태서)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했다. 반나절 이상을 앉아서 공부만 하니, 좀이 쑤시기도 해서 일찍이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 저녁도 먹기 전, 6시쯤이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노선표를 따라 걸었고 우리만의 종점, 빵집에 도착하여 얼굴도장도 찍어주었다. 시간이 꽤 널널해서 빵과 아아를 음미하며 우린 각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폰 화면을 켜고 멍 때리는 나를 본 건지, 엄마는 보던 걸 멈추곤 내 폰 화면을 보며 물었다.

”..   그건 뭐야..?“

“친구가 보고 경악했던 내 배경화면”

그러곤 내 배경화면을 보였다. (참고로 내 배경화면은 세계사 암기 내용이 적힌 메모장이다.)

“근데 방금은 그냥 딴생각하고 있었어. 오늘 이상하게도 공부가 정말 잘 되더라고.. 근데, 이유를 모르겠어“

그 빵집에서 이유는 이렇게 정리되었다.

”나는 또 뭔가 대단한 이유, 대단한 믿음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일단 웬만치는 다 했고 이젠 부족한 걸 보충하는 시간으로 바뀌니까, 이 부분에서 내가 열심히 했구나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재미있어진 거네.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할 것 같아서란 마음에서도 더 하게 되는 거였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니, 단골 카페의 초코라떼가 너무 먹고 싶었다. 슬그머니 집을 나와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가서 초코라떼를 받아왔다. 초코의 단맛을 즐기며 다시금 공부에 집중했다.


시간은 흘러 벌써 밤 11시가 되었다. 내일 학교도 가야 하니 지금 샤워를 하는 게 딱 맞을 것 같아,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해 두곤 흥얼대며 씻었다.


머리를 말리며 나는 또 생각에 잠겼다. 아까 빵집에서 한 이야기를 되새겼다. 베란다의 까끌까끌한 나무 의자에 앉아있던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고 있었는데, 5분도 되지 않아 놓치고 있던 가장 큰 이유를 알아챘다. 내가 오늘 하루종일 공부가 잘 되었던 이유를 말이다. 다시 상기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긴 하지만, 나에게 있어 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내 감을 따르는 것이었다. 너무나 가벼워 보이고 너무나 쉬워 보이지만, 내 감을 꿋꿋이, 끝까지 믿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나는 어제와 오늘, 철저히 내 감을 따르는 공부를 해보았다. 이 말에 앞서,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것 먼저 밝히겠다. 독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개인의 사정은 결코 고려하지 않은 학원 스케줄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믿기 힘들지만 내 계획을 되돌아보면, 지금껏 나는 모든 과목을 학원 스케줄처럼 짰다는 거다. ‘오늘 하기 싫긴 하지만, 3일 정도 지났으니까 다시 해야지. 하고 싶은 거만 하면 그게 공부야? 내가 하고 싶은 거만 계속할 텐데, 그건 안되지이렇게 생각했고 플래너엔 내 감을 배제시킨 계획만을 늘어놓았다. 내가 그리 기피하던 학원의 본질과 다를 게 없었다.


최근에 알게 된 건데, 매일마다 하고 싶은 과목이 달라진다는 거다. 오늘은 국어가 진짜 하고 싶은데, 내일은 영어가 진짜 하고 싶어지고.. 계획을 짤 때마다 이러한 변동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매번 같은 과목만 하고 싶은 건 아니네? 매일 계속 바뀌네? 하지만 이걸 눈치채도 나는 여전히 내 감을 믿기 어려웠다.


감을 믿기 어려웠던 첫 번째 이유는, 감을 믿고 계획을 짜기엔 난 너무 불안했다.

굳이..? 라는 생각도 있었고.. 즉, 감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던 거다. 아무도 맞다고 해주지 않는, 내 감을 따르는 계획을 도저히 짤 수가 없었다. 꿋꿋이 따른 뒤의 결과를 내가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 나는 나를 내버려 두면, 즉 내 감을 따르는 삶을 살면, 일차원적인 쾌락(유튜브, 웹툰, 게임 등)만을 추구할 거라 믿었다.

나는 겉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척 부정했지만, 나의 행동들은 모두 나를 절제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걸 고려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매일 계획을 짰다. 그리고 난 매번 그날, 하기 싫은 과목을 선택하곤 했다. 하기 싫은 과목을 선택했던 이유는, 하기 싫어서가 이유였다. 오늘 이것을 하기 싫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내가 지금 익숙하지 않고 어려우니까 도망가는 것이라 해석했다. 또한 공부는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하기 싫은 과목을 선택하는 게 잘하는 일이라 믿었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살아왔다.



내가 나를 이렇게 말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범적이라 해야 하나, 어쨌거나 좀 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감에 따라 행동한 내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하기 싫은 과목만 나열해 놓은 플래너를 보고 있자면 누구나 하기 싫을 테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계획 도중에도 매번 유튜브로 도망친 것이다. 나는 성실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지만 나 스스로 그런 나를 짓밟고 있었다. 더욱 단적으로 말해볼까. 나는 나를 쓰레기 취급했고, 도망치고 싶은 계획을 만들어 놓았다는 거다. 그러자 나는 내가 생각하는 취급에 걸맞은 행동을 했고, 그 믿음을 굳건히 다져올 수 있었던 거다.


도망치고 싶은 계획을, 즉 내 감과는 철저히 반대되는 계획을 만들어 놓고서는 도망치는 나에게 ‘봐, 내가 저럴 줄 알았어’ 하며 책망하는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일 년을, 그 이상을 살아왔다.



내 감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떻게 확신하냐는 말에 대답하겠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으니까요. 지금까지는 다수의 말을 그저 따르는 삶을 살아왔는데, 단지 내 감만을 따르는 삶을 한 번 살아봤더니, 원하던 걸 채우니까, 분명 아침엔 하기 싫었던 것도 나중엔 하고 싶어 지더라고요. 하루 안에도 마음이 바뀌는 게 참 신기했는데, 저는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결국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선 나에게 무엇이 적절한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은 그 자체로 경험해 볼 가치가 충분히 존재한다.


삶이란 파도 속을 항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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