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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무서운 손님들

바선생과 도선생

by 봄날의 봄동이

말레이시아살이의 최대 단점 중 하나는 벌레 걱정이다. 말레이시아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며 든 생각이 '아 이제 바퀴벌레 걱정은 안 하고 살아도 되겠다'였을 정도로 나에게도 바선생은 사는 내내 공포의 대상이었다. 말레이시아에 가기 전 인터넷으로 각종 검색을 하며 사전 조사를 할 때부터 바선생과 관련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날아다닌다느니, 크기가 한국에서 보던 거랑은 비교가 안 된다느니 등등.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아직 날아다니는 바선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앞으로도 안 보고 싶다) 크기도 그냥 바선생하면 떠오르는 그런 정도의 크기여서 별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어쨌든 내 생활 반경 안에 자꾸 등장을 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바선생을 볼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말레이시아는 그에 비하면 확실히 많다. 일단 길에서부터 죽어있는 시체, 돌아다니는 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고 택시를 타도 차 안에서 바퀴벌레가 나오기도 하고 건물 공용 공간에서도 마주친다. 운 나쁘면 집 안에서도.


3년간 지내며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바선생과의 만남은 첫해에 살던 신축 건물 공용공간에서였다. 출근길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들고 나와 쓰레기장 문을 열려고 하는데(말레이시아에는 콘도 층마다 쓰레기 버리는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쓰레기통이 늘어서 있는 경우가 많다) 닫힌 쓰레기장 손잡이 위에 바선생 한 분이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이다. 바로 출근은 해야 하고 다시 들어가고 하기엔 시간이 늦고 내 손엔 쓰레기 봉투가 들려있는데 엘리베이터는 이미 오고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여 잠시 바선생을 바라보며 고민하다 결국 징그러움에 몸서리치며 문 앞에 봉투를 던져두고 도망치듯 떠났고 내 눈에는 아직도 그 손잡이에 올라앉은 바선생의 잔상이 남아있다.


밖에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집 안에만 안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한데 그것도 꼭 보장이 되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새집이나 깨끗한 집에 들어가 문틈, 싱크대 아래 등 바퀴가 나올만한 곳을 다 막고 주기적으로 약을 뿌리고 관리하면 안 보고 살 수도 있지만 이미 건물이나 집 자체가 바선생이 터를 잡은 곳이라면 이것도 소용이 없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구글 지도에서 건물 이름을 검색해 리뷰를 먼저 확인하곤 했는데 위치에 비해 이상하게 시세가 저렴하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바선생이 출몰한다는 리뷰를 볼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인들의 바선생에 대한 인식도 우리와 조금은 다르다. 한번은 공용공간의 바퀴 문제 때문에 거주하던 건물 관리소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직원이 종이를 쌓아두면 바선생이 나오니 조심해야 한다며(?), 자신도 예전에 예쁜 홍빠오(중국계 특유의 문화로 돈을 담아 주고 받는 빨간 봉투) 봉투를 모아뒀다가 나중에 그 서랍을 열었더니 바선생들이 튀어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회사 동료는 바선생 특유의 냄새가 있다며 자고 있을 때 머리 뒤 편으로 다가오는 바선생의 냄새를 맡았다고 해(!!) 날 놀라게 했다. 바선생의 냄새가 어떤지는 평생 몰라도 될 것 같다.


도마뱀이야 바선생에 비하면 사실 귀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크기가 좀 있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보니 나타났을 때 비주얼쇼크가 있다. 도선생의 난감한 점은 바선생은 나타나면 일단 죽인다는 답이 있지만 도마뱀은 부피감이 있다보니 똑같이 책같은 것으로 때려 죽일 수도 없고 왠지 미안하게도 느껴진다. 삼 년 동안 내가 사는 공간에서 도선생과 마주친 적은 두 번인데, 두 번 다 같은 이유로 처리가 난감했었다. 처음에는 빗자루로 현관 밖으로 밀어냈었고, 두 번째는 내 집안은 아니라서 매니지먼트에 연락하니 처리를 위해 올라와 주었다. 현지인은 도선생을 어떻게 처리하나 궁금했는데 잠자리채 같은 것을 가져와서 천장에 붙은 도마뱀을 수거한 다음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역시 노하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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