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승무원이 퇴사하는
스탭 티켓 외에 또 하나의 장점은 승무원의 레이오버를 따라가서 함께 그 호텔에 묵으며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승무원이 묵는 호텔은 레이오버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물가가 저렴한 곳은 상대적으로 더 좋은 호텔, 비싼 지역은 덜 좋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괜찮은 호텔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혈육의 레이오버를 따라다니며 비행기값에 호텔 비용까지 절약하며 함께 짧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호텔의 조식이나 룸서비스도 승무원 할인이 되는 경우가 많고, 따라온 나까지 무료조식을 제공해 주는 호텔도 있었다.
물론 승무원의 모든 비행이 따라가기에 적당한 것은 아니다. 특히 혈육이 다니는 모 중동 항공사는 짧은 레이오버와 살인적인 스케줄로 유명해 도착지에서 잠만 자고 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승무원의 호텔은 공항과 가까운 경우가 많다 보니 시내와는 거리가 있어 체류시간이 짧으면 승무원 본인도 시내 구경 한번 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도 드물게는 중간에 휴일이 하루 끼어있어 상대적으로 체류 시간이 긴 비행이 있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따라가곤 했다. 물론 그런 곳은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해 미리 신청한 사람만 겨우 스케줄에 나올까 말까라고.
레이오버를 따라가는 여행은 비행기표도 호텔도 상대적으로 큰돈이 들지 않았고, 승무원들끼리 레이오버지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얼하면 좋을지 이미 정보가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숙박부터 일정까지 아무 계획도 짜지 않고 몸만 따라갔다 오는 편한 여행이었다. 반대로 혈육이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비행을 올 때면 혈육의 호텔에 함께 머물며 일상에서 벗어나 호캉스 같은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마냥 신이 나 있었지만 혈육은 일하며 와서 피곤한 몸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바짝 구경하고 다시 일을 하며 돌아가는 일정이다 보니 늘 지쳐있었다. 중간에 데이오프가 있는 비행이라고는 해도 고작 하루 정도라 그때 함께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보면 혈육의 표정은 늘 지쳐있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럴 때마다 안쓰럽고 왠지 미안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혈육은 체력이 좋은 편이라 나를 끌고 더 열정적으로 다니기도 했다. 역시 이런 사람이 승무원하나보다.
승무원 가족만의 막강한 혜택은 승무원의 그 고된 체력적, 감정적 노동 없이 티켓 할인과 호텔 무료투숙 같은 혜택만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리라. 저질 체력에 회사 사무실에만 앉아 있어도 에너지가 고갈되는 HSP력 강한 나는 어릴 적 가당찮게도 승무원이 되고자 했다. 그 꿈은 다행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신 몇 년이 흘러 신의 선물처럼 승무원의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가족 신분으로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 혈육이 비행 다니며 남아공에서 펭귄과 찍은 사진, 어느 아프리카 나라에서 찍은 치타 사진 등을 보면 너무 부럽다. 더 많이 다니려면 승무원 가족이면서 디지털 노마드라도 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혈육은 이제 퇴사한다. 안 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