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강의가 줄어들고 있다.
이번주만 해도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 되면서 예정 되어 있던 교육 4개가 사라졌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프리랜서 성평등 교육 활동가로 거듭나나 싶었는데 세상일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남함페라는 소속집단이 있어서 여기에서 계속해서 교육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느낀다.
이번 교육은 <성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8월 월례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 됐다. 안전하고 성평등한 공동체는 지난 서울청정넷 활동을 하면서 계속하던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안전하고 성평등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문제를 어떻게 직면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평소 하던 고민 내용을 담아 강의로 구성했다.
강의는 이 시국을 고려하여 온, 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 되었다.
사실 강의의 편의성을 고려하면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는 것이 수월하였겠으나 내가 여전히 조선사람인 것인지 온라인의 한계가 여전히 너무 크게 느껴진다. 온라인으로만 진행했을 때는 일단 사람을 모으는 것부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모인 사람들도 그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 강의 내용이 잘 전달 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워서 강의하는 입장에서도 위축되고 유연하게 강의를 전달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요새는 대부분의 강의에서 참여형 프로그램을 최소 한 개 이상 넣고는 하는데, 온라인에 모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강의 프로그램 개발이 아직 미진하다. 물론 내 게으름의 탓이겠으나 이런 한계를 당장에 극복할 자신이 없기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했다.
온라인 강의를 급하게 준비한 까닭에 기술 지원이 부족했다. 평소 강의처럼 서서 이야기하면 온라인 상에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책상 앞에 앉아 강의를 해야 했는데 오프라인 참여자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마이크와 장비를 좀 더 갖춰야겠다.
그래도 오프라인에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니 강의를 진행하기는 훨씬 수월했다.
앞부분은 기존과 동일하게 페미니즘을 접한 계기를 공유했다. 그래도 마냥 똑같은건 양심에 찔려서, 뒷 부분에 책 <페미니즘의 쉼표, 이분법 앞에서>의 내용을 발췌하여 공유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된다’” 참여자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스스로의 과정과 계기를 복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원래 이 내용이 끝나고 함께 페미니즘을 접한 계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진다. 서로 다른 다양한 계기를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페미니즘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 이런 식의 참여형 프로그램이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체에 애정을 갖게 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다만 이 시국으로 인해 참여형 프로그램은 생략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특권과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김지혜 선생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책에 나온 특권과 사회적 차별에 대한 내용이다. 실제 공동체 활동을 하며 위치성, 특권, 무지 등으로 인해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상처받는 이 참사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준비했다. 실제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어봤을 말들, 예를 들어 “00이가 xx팀 꽃이네”, “오늘 옷 예쁘게 입었네, 어디 좋은데 놀러가나봐~”와 같은 발언, 무엇이, 왜 문제인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후 스브스뉴스에서 진행한 특권걷기 영상을 함께 보고 특권 체크리스트를 살펴봤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에 영상이 송출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링크를 따로 공유하기는 했으나 참여자 입장에서는 소외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문제였다. 다음부터는 피티 화면에서 영상이 바로 나올 수 있도록 조치해야겠다.
이후 우리사회의 권력구조를 발견하고 특권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프로그램도 원래 함께 모여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으나 시국을 고려하여 각자 활동지에 적어보도록 했다. 참여자들이 적은 내용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후 아카이빙할 예정이다. 또 좋은 교육 참고 자료가 될 수 있겠지.
사실 이 부분은 공유가 중요하다. 서로가 찾은 특권을 들어보면서, 저런 것도 특권과 차별이 될 수 있구나를 인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많은 남성들이 이 특권에 무지하다. 김지혜 선생님 책에서도 이야기했듯, 특권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된 온갖 혜택.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출처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8쪽)를 말한다. 개인이 경험하는 삶이란 편협하기 그지 없고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타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기 어렵다. 나 역시도 주변 좋은 친구들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수많은 여성들이 택시를 탈 때 경험하는 불쾌함, 화장실에서 느끼는 감정, 어두운 골목을 지날 때의 공포를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시작이 되어 공감하고 문제 해결까지 함께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공유를 좀 더 많이 해봐야겠다.
세 번째 프로그램은 공동체를 밝히는 신호등이다.
이 프로그램 내용은 마이클 코프먼의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 공동체에서 갈등은 가해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마냥 가해자를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피해자만 이를 감내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 이를 제대로, 잘 해결하고 나아가 예방하기 위해 공동체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먼저 공동체 구성원이 생각하는 ‘노란불’ 상황을 공유한다. 여기서 ‘노란불 상황’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말/행동/상황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대의 신체에 동의받지 않은 접촉을 하거나 맥락과 상황에 맞지 않는 성적인 농담 같은 명백한 성희롱, 성추행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모호하여 누군가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불쾌한 말/행동/상황, 예를 들어서 나이, 거주지 등 개인정보를 물어본다던가, 누군가 발언을 독점하는 것 등이 있다. 이를 공유하는 작업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떤 것을 불편해 하는지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위기, 갈등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전쟁이 동일성에 기반해 있다면, 평화는 차이를 견디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출처 : 권김현영,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292쪽)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세상에 갈등, 문제가 없는 조직은 없다. 작은 문제라고 쉬쉬하고 넘어가거나 혹은 모든 갈등을 엄벌로만 처리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예방할 수도 공동체 구성원이 안전함을 느낄 수도 없다. 문제가 이야기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더 큰 문제가, 더 파괴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란불을 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노란불을 컬 수 있는 환경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한 문화를 이야기 한다. 이러한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에, 약속문을 만들고 내규를 다듬고, 사례보고서와 교육, 신고창구를 개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노란불을 함께 들어주는 지지자를 통해 완성된다. 노란불 지지자가 되기 위해 먼저 노란불 표현 방법을 공유했다. 노란불 상황일 때, 나는 어떻게 이를 표현하는지, 혹은 표현할 것인지 공유하면서 노란불을 더 자주 편하게 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나아가 서로 노란불 표현 방법을 공유한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좀 더 편하고 빠르게 상황을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이어서 노란불을 발견한 목격자, 노란불을 켜지게 한 당사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 나눴다. 목격자가 방관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타인의 노란불을 봤다면 어떻게 무시, 외면하지 않고 도울 수 있을 것인가 미리 상상하면서 문제 상황에 대응할 능력을 길렀다. 또 모두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언제든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당사자 되기 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상처 줬을 때, 어떻게 그 상처가 더 커지지 않고 잘 봉합 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것을 잘 아는 것도 문제를 저지르지 않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자칫 빨간불에 해당하는 사람 역시 공동체가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오해를 살 수 있겠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직 생각이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공동체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빨간불의 경우에는 단호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빨간불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명백한 가해행위라서 당연히 빨간 불인 것을 제외한다면, 막연하게 생각하기로는 그 사람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지가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지않을까 싶다. 모호하다지만, 원체 모호한 것을 어떻게 한담.
마지막은 남함페가 안전하고 성평등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는 노력들을 소개했다. 첫째, 약속문이 있다. 거의 모든 모임 시작에 약속문을 배치하여 읽고 시작한다. 조금 유치해 보여도 읽어보는 작업을 통해 누군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기에 되도록 함께 읽으며 시작하고 있다. 둘째, 내규에 사건 처리 절차를 만들어 고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사례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례보고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와 맞닿아 있던 사람들이 함께 그 사건을 어떻게 접하였고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였으며 행동했는지 적는 보고서다. 별 것 아니지만 이 작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자신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으며 향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대처법을 찾을 수 있다. 셋째, 교육이다. 결국 조직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에 이와 같은 교육을 최대한 많이 진행하려 한다. 넷째, 소통창구다. 페이스북 메시지와 이메일을 통해 계속해서 이런 문제를 귀담아 들으려 한다.
이렇게 강의를 마쳤다.
정말 해보고 싶은 강의였고 그래도 나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한 것 같다.
사람들이 더 왔더라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지만 언젠가 기회가 또 오겠지.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