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꽃봄 May 02. 2023

시골집 고치기 - 지붕색을 고르는 일

시골집 리모델링,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되도록 햇살집의 분위기를 유지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지붕은 예외이다. 노후된 슬레이트 때문이었다. 과거 지붕의 주요 소재였던 슬레이트에 함유되어 있는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신입사원 교육 때 들었던 내용인데, 햇살집에서 실물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비용이 부담되면 우선은 코팅만 할 수도 있다는 시공사의 의견도 있었지만, 지우와 함께할 공간이기 때문에 어영부영 넘어갈 수는 없었다.

  

   지자체마다 금액이 다르긴 하지만, 슬레이트 철거와 이로 인한 지붕개량에는 정부의 지원이 따른다. 대부분 3월 전 후로 신청을 받고, 장마가 오기 전 공사를 진행한다. 다행히 양양의 슬레이트 철거 지원 사업은 수시 신청이 가능하였고, 예산 또한 남아있어 바로 접수했다.


   그리고 고뇌의 나날이 이어졌다. 햇살집이 풍겼으면 하는 분위기에 대해 고민했다. 살면서 지붕색을 고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 않으면서 살 법한 특별한 선택, 요즘 우리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이었다.

    

    지붕 소재와 색을 선택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햇살집의 새 지붕은 붉은 벽돌과 잘 어울려야 하고, 주변 풍광과도 조화로워야 하고, 염두하고 있는 돌담과 이질감이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 4인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이번엔 우리 넷의 의견이 모두 달랐다. 나는 알록달록한 컬러강판이나 스페니쉬 기와를 얹은 이국적인 지붕이 좋았고, 다니엘은 그레이 톤의 한옥 기와를 이야기했다. 다니엘라는 지금의 지붕색을 고수하고 싶어 했고, 진은 말이 없었다.


   의견을 내세울 때에는 모두 조심스러웠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며 단어를 고르던 것이 언제였을까. 대화를 할 때마다 느꼈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의식적으로 말을 둥글게 다듬어 대화하고 있었다. 나의 말에는 어떤 배려가 담겨 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부족했다. 지붕 색을 고르는 일은,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발견하고 채워나가는 일이기도 했다.


   침묵을 고수했던 진에게 발언권이 권유되었다. 진은 말에 무게가 있는 사람이다. 어렵게 어렵게 말 문을 연 진은 본인 의견의 배경부터 설명했다. 숙소로 활용될 때 이곳을 거쳐갈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 햇살집은 흔히 개조되고 있는 한옥구조가 아니라는 것, 바뀌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진은 생각 중인 색의 조합을 도식화하여 컴퓨터 화면에 띄웠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조합이었다. 하얀 지붕?!! 진의 지붕색은 흰빛이 베이스가 된 누디한 톤의 컬러였다. 한 방울 어떤 색을 더할지는 같이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생각의 흐름과는 결이 달랐지만, 우리는 진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내 어린아이처럼 설레었다.


   지우가 잠든 밤에는 색연필을 꺼내 도면 뒤에 그림을 그렸다. 진은 아날로그라며 웃었지만, 이 설렘에는 색연필이 딱이었다. 다름 아닌 우리가 지금, 각진 도면 위에 알록달록한 인생을 그리고 있기에.



이전 05화 양양 시골집 계약하기 -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