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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l 15. 2024

나의 덕질을 알리지 마라

아직은 부끄러운 덕질 생활

40대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인생에 매우 큰 활력을 주는 일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기는 영 부끄러운 일이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통해 변우석이라는 배우를 알게 되고, 드라마 속 선재 캐릭터를 넘어 인간 변우석 자체를 좋아하게 되면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생애 첫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늘 빡빡하기만 한 워킹맘의 일상에 변우석이 있는 틈 없는 틈을 다 비집고 들어와 촘촘히 자리를 잡았다. 출퇴근 길과 점심시간, 퇴근 후 등 업무와 육아와 관련 없는 모든 일상은 변우석 사진과 영상, 관련 기사와 SNS를 둘러보는 일로 꽉 차버렸고 늦게 배운 덕질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변우석을 파고 다니는 하루가 이어졌다.


늘어만 가는 폰 속 사진들

이렇게 온통 변우석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그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부장이라는 직급의 무게 때문에, 집에서는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 때문에, 10대 소녀에게나 어울릴 법한 감정을 연예인에게 느낀다는 게 주책없게 받아들여질까 봐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그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극히 일부 지인들에게만 나의 이 폭발적인 감정을 털어놓을 뿐, 정작 내 삶의 가장 중요한 터전이 되는 집과 회사에서는 변우석을 향한 설레는 마음에 대해 함구하고 조용히 덕질을 했다. 회사에서는 변우석은커녕 연예인에 관한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고, 집에서는 변우석의 사진과 영상을 찾아 헤매느라 눈과 손이 분주한 와중에도 마치 온라인 쇼핑을 하는 듯, 아이의 학교 알리미를 확인하는 듯, 철저히 사무적이고 무미건조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속으로만 '꺄아 꺄아! 멋있어~' 비명을 질렀.


그렇게 비밀리에 덕질이 깊어지고 있던 어느 날, 덕질이 계속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대담해진 것인지 방심한 것인지, 사무실 책상 위에 슬쩍 변우석의 포토카드를 올려놓아 보았다.


어차피 파티션이 적당히 시야를 가려주는 곳이 사무실 아닌가. 게다가 요즘 근무 추세는 팀원들이 자리에 찾아와서 얘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한 사무실 안에서도 메신저로 용건을 얘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토카드 크기도 작았고, 내 정면에 살짝 올려두면 몸에 가려져서 딱히 다른 팀원들에게 보일 것 같지도 않았다.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작은 사진 올려놓는 정도야 뭐 어때, 남들은 가족사진이며 애인 사진이며 빼곡하게 올려두기도 하는데 뭐, 책상에 뭘 두든 개인 자유지,라는 마음으로 포토카드를 살짝 놓았건만......


그동안 내 자리에 단 한 번도 온 적 없던 사원이 하필 그날따라 성큼성큼 내 책상에 다가왔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사진을 치울 사이도 없이 훅 하고 들어온 직원, 제발 그의 시선이 사진에 닿지 않기를 바라며 얼른 일 얘기를 끝내고 본인 자리로 돌아가 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때......


"부장님, 이 사람 누구예요?"


올 것이 왔다.


"네?"


화들짝 놀란 나는 그저 반문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제발 그 사진을 보고 말하는 게 아니기를 바라며.

그러나 그는 정확히 포토카드를 가리키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이 사람이요. 누구예요?"


"어머... 변... 변우석... 몰라요...? 저기... 드라마 요즘 유명한데... 선재..."


변우석보다도 어린 한참 후배 앞에서 얼굴까지 빨갛게 물든 채 말을 더듬었다. 아... 나 부장인데... 내가 대체 입사 몇 년 차인데... 이런 망신이... 후배가 속으로 이 아줌마 주책이라고 생각할까 봐 너무 낯이 뜨거웠다. 그렇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내가 변우석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말았다. 그 후에도 나의 덕질이 어느 지경인지 회사 사람들에게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식당이나 카페에서 <선재 업고 튀어> O.S.T가 들려올 때 "노래 좋지 않아요? 저는 변우석 팬이라 매일 들어요. 배우가 가수처럼 노래도 잘하죠?" 정도는 수줍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집에서의 덕질 보안 유지 현황은? 남편보다 초등학생 아들이 더 날카롭다. 폰에 저장해 둔 변우석 사진을 어느 틈에 발견하고 "엄마, 이 사람 좋아해?" 큰 소리로 물어봐서 나를 종종 난감하게 만든다. 과연 남편은 아들이 물어보는 소리를 들었는가 못 들었는가. 그는 정말 나의 덕질을 모르고 있는가, 모른 척해 주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가.


배우를 좋아하고 응원한다는 게 왜 이렇게까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지, 그놈의 부장이 뭔지, 엄마는 또 뭔지, 나이는 또 뭔지...... 현재 내 모습을 규정하는 모든 굴레들이 아직까지는 너무 무거워서, 나의 덕질을 알리고 싶지 않고 완벽한 사생활로 간직하고 싶은 이 마음. 그렇게 비밀로 간직하기엔 이미 여기저기 흘려 놓은 증거들이 너무 많은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이여, 다들 저의 덕질을 응원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그저 모른 척해 주세요, 그냥 조용히 사랑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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