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라비다바다 Mar 31. 2024

내가 사는 동네가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일상이지만 일상을 벗어난 느낌

 내가 사는 섬동네가 핫한 관광지가 되었다. 8년 전쯤 바다 따라 레일이 깔리는 걸 보면서 우리가족은 '무슨 이런 곳에 레일바이크를 세우냐'며 혀를 끌끌 찼었는데, 지금은 그 레일바이크를 타려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기 줄을 선다. 6년 전만 해도 바다로 이어지는 도로에 차 한대 없어서 연인인 S와 나는 이 세상에 우리밖에 없는 것 마냥 노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틀어놓고 맘껏 뛰어다녔는데, 이젠 주말마다 주차 대란이 일어나는 걸 목격한다. 혼자 여유로이 책읽고 글쓰러 가던 동네 카페는 SNS에 가봐야하는 오션뷰 카페로 소개되어, 카페를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서야 한다.


우리동네 흔한 오션뷰 카페


동네에 사람이 많아져 번잡해진 것에 대한 불편함은 없고, 나는 그저 이 광경이 좋다. 대가족, 연인, 어린아이 다양한 사람들이 먼곳에서들 찾아와 하하호호 웃고 있으니, 사람 구경하는 맛에 동네 산책이 질리지가 않는다특히 레일바이크 길 따라 나있는 산책로를 걷다보면, 수많은 여행객들이 내옆을 물밀듯 지나간다. 


최근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들이 누가누가 더 열심히 바퀴를 굴리는지 경쟁하는 것 마냥 아주 빠르게 굴려 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소리지르면서. 그러다가 나를 향해 '안녕하세요~' 크게 외치길래, 내성적인 나도 작게나마 손 흔들며 '안녕'이라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그게 또 좋았는지 '와하하하하하 안녕하세요' 한 번 더 크게 외치고는 레일바이크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때 나는 늦잠을 자다가 나와 무기력하게 터벅터벅 걷고 있던 참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밝은 에너지가 나를 관통하고 간 듯 했다. 어른이 되고선 좀처럼 느껴본 적 없던 기운이었으니, 잠시 지나친 것만으로도 괜스레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엔 레일바이크를 타고가는 한 아주머니가 '저기요 여기 자리 비었어요~ 여기 같이 타세요~' 우리가족을 향해 크게 서너번 외치는 것이다. 그저 동네주민으로서 길을 걷고 있었던 것 뿐인데, 그분이 보기엔 우리가 레일바이크 탈 여력이 안돼서 힘들게 걷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까? 그 외침에 차마 뭐라고 대응해야할지 몰라 끝까지 못들은 척 하고 앞만 보고 걸었지만 그분은 계속 외치셨다. '여기 자리 비었다니깐요~' 그런 따뜻한 오지랖을 목격한 날도 있었다. 




그 기다란 레일바이크길을 지나고 나면 곧 치명적인 삼겹살 향기가 풍겨온다. 카라반 캠핑장이다. 여기도 처음 생겼을 땐 '누가 이런 곳에 캠핑을 오나' 생각했는데, 지나갈때면 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걷고 걷다가 뱃터쪽이 가까워지면 낚시꾼들이 여럿 보인다. 여기서 뭐가 잡히긴 하는지 궁금해 그들의 낚시통을 슬쩍 엿보지만 딱히 특별한 게 보이진 않는다. 항구에는 누군가 새우깡을 뿌리고 있는지 갈매기들이 무서울만큼 떼지어 있고, 바다를 좋아하는 리트리버 한마리가 항구쪽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빠졌다가 돌아왔다가 빠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일렬로 줄지어진 횟집들 앞에선 옛 가요들이 큰 소리로 흘러나오고, 식당 안은 식사시간이 아닌데도 꽤나 붐빈다. 이런 공간에 있으면 나도 여행온 듯한 느낌을 받아 절로 흥겨워진다. 


특히 여행 온 사람들의 표정이 얼마나 밝은지, 행복해하는 그들의 표정에 내 기분도 동화된다. 우리 동네는 특히 해질노을이 참으로 예쁜데, 어느날엔 그 분위기에 심취한 연인이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로 인해 우리 동네가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장소가 되었다. 나도 그 영화 속 한 컷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고 귓가엔 감성적인 BGM이 잔잔하게 깔리는 듯 했다. 이렇게 낭만적인 풍경은 그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는 걸 느꼈다.



노을이 예쁜 우리 동네


'이곳이 원래 이렇게나 아름다웠던가' 여행자들을 구경하다, 어느새 나도 그들 사이에 껴 여행자의 시선으로 우리 동네를 감탄하며 바라보게 된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을 주황 끈으로 칭칭 둘러맨듯한 노을,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는 시원한 파도소리를 감상하며 '그래, 이러려고 사는거지, 이게 행복이지'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대충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옷을 걸쳐입고 나가면 여행지가 되는 우리 동네, 일상이지만 일상을 벗어난듯한 느낌을 주는 나의 동네, 이보다 좋은 곳이 또 있을까. 마음의 정화가 필요할 때 언제든 찾아갈 곳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이전 04화 20대지만 동치미 방송을 즐겨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