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라비다바다 Apr 11. 2024

벚꽃이 져도 아쉬워 마세요

사계절이 주는 낭만에 대하여

나의 주 활동지는 여의도다. 그런데 평소 정장 차림의 회사원들로 가득한 이곳이 지난 몇일간 다채로운 복장의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져 있었다. 핫핑크 색의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 대학교 과 잠바를 입고 온 신입생 무리들, 같은 색으로 커플룩을 맞춰 입은 연인, 타이트한 자전거 복장을 입은 라이더족 등...그렇다. 벚꽃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윤중로에 벚꽃이 만개하니, 직장인들로 가득한 여의도에 잠시 색다른 활기가 돌았다. 1년에 한번 일주일 한정으로 돌아오는 이 화사한 분위기를 누리기 위해, 나도 직장동료들과 함께 그들 틈에 껴 윤중로를 거닐었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봄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아, 우리는 '벚꽃 참 잘 폈다'는 얘기만큼이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저 아기 너무 귀엽다, 잠옷 바람으로 꽃구경을 왔네"

"방금 봤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셀카봉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셨어"

"아 이런, 한 커플이 뽀뽀하는 걸 눈앞에서 직관해버렸어. 벚꽃 철엔 피할 수가 없네."

"저기 강아지를 벚꽃 위로 높이 들고 사진찍는 것 좀 봐. 작고 하찮은 강아지라 더 귀여워"


윤중로를 거닐고 국회 경내로 들어오니 곳곳에는 돗자리들이 펴있었다. 벚나무 아래, 제각각 다른 사원증을 건 여의도 직장인들이 샌드위치, 떡볶이 등 가벼운 음식을 먹으며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분명 이곳은 한강이 아닌 국회인데 말이다. 특히 어느 팀은 잔디밭에 거대한 면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길래, 돗자리 개수를 세어보니 무려 6개를 붙여 깔아놓은 것이었다. 저정도면 피크닉이 아닌 부서 전체 회식을 하러 온 게 아닐까? 회식에서 막내들이 부지런히 수저 세팅을 하는 것 마냥, 어려보이는 직원들 두세명만 먼저 와서  돗자리 세팅을 해놓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저건 피크닉보다 회식이라 하는게 맞겠다. 그래도 저렇게 야외에 둘러앉아 먹는 것이 직장인의 하루에 얼마나 단비가 되는지 알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느껴졌다. 


이렇게 1년에 한번씩 전국민이 벚꽃에 취해, 괜히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몽글몽글해지는 때가 있다. 주말에 작정하고 벚꽃 명소를 찾아가 누리는 기쁨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 바삐 하루를 통과하는 중에도 틈틈히 벚꽃으로 힐링이 되니, 벚꽃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참 큰 듯 하다. 




문득 나의 봄을 돌아보니, 매 해마다 다양한 곳에서 벚꽃을 만끽한 시간들이 내 삶의 행복으로 쌓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해엔 엄마와 김밥을 싸서 동네 벚꽃명소인 동산으로 소풍을 갔던 적이 있다거대한 크기의 수양 벚나무로 가득한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으니, 벚꽃이 세상을 가득 채운 보였다. 특히 그날은 살랑이는 봄바람에 벚꽃이 자유로이 흩날렸으니, 나는 장범준의 벚꽃엔딩을 계속 흥얼거렸다. 한편 그 흩날림이 멈추지 않아, 자꾸 도시락 안으로 꽃잎이 들어오는 바람에 도시락을 지키랴 꽃구경하랴 분주히 움직이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야기하곤 한다. 백년 이상 된듯한 거대한 벚나무들로부터 날라오는 꽃잎은 하늘 높이서 내리는 꽃비 같았으니, 그 찬란함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연인인 S와 내가 둘다 각자 목표하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하던 시절엔, 서울에서의 벚꽃을 놓쳤었다. 이미 꽃은 져버렸으니 우리는 벚꽃대한 미련을 버린 했으나, 막상 나의 본가 근처인 '장봉도'라는 섬엔 아직도 벚꽃이 펴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그곳으로 향했다. 실제로 가보니 해안도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으니 풍경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차로 한바퀴를 천천히 돌며 바다와 어우러진 벚꽃을 감상했는데, 바다와 벚꽃의 조합이 어찌나 찬란한지. 우리는 함께 봐온 벚꽃 풍경 중 장봉도를 1등으로 꼽으며 그 날을 추억한다. 


(좌) 22년 엄마와 돗자리에 누워서 본 목련과 벚꽃의 조합  (우) 20년 장봉도의 바다, 그리고 벚꽃 




이외에도 나의 핸드폰 사진앨범 속엔 매년 4월 초마다 만개한 벚꽃만큼이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들이 쌓여 있었다.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벚꽃이란 낭만 덕에, 매년 이맘때쯤이면 보장된 행복을 얻었던 것이다. 이렇게 계절마다 돌아오는 낭만을 즐기고, 아쉽지만 떠나보내고 또 1년 후가 되면 다르게 즐기고, 그렇게 매년 추억을 쌓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봄의 벚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주는 낭만은 참 다채롭다. 벚꽃이 지면 겹벚꽃, 철쭉, 장미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 생기를 이어나간다. 그러니 온갖 꽃축제나 수목원에 가서 꽃들이 뽐내는 화려함을 구경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나무들이 온통 푸릇푸릇하니, 한강 어디든 돗자리를 깔고 누워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그게 힐링이다. 강이나 숲 뷰를 가진 야외 카페에도 온종일 있을 수 있다. 

뜨거운 여름이 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듯 정신줄을 놓고 물놀이에 흠뻑 빠진다. 특히 동해나 해운대의 거센 파도에 싸대기를 맞으며 소리도 질러보고 피부를 잔뜩 태워가며 수영하다가, 중간에 컵라면은 필수로 먹어주어야 한다. 

나뭇잎들이 알록달록해지는 가을이 오면 단풍을 구경하러 온갖 산과 절을 찾아 떠난다. '천고마비'란 표현처럼 하늘이 예쁘니 어딜 가든 어디에 드러누워있든 좋다. 

날이 추워 바깥에 있기 힘든 겨울에는 찜질방, 특히 숯가마찜질방에 가서 땀을 쫙 빼어준다. 눈 내리는 날엔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걸 보며 야외온천을 즐기고, 눈꽃축제에 가서 끊임없이 썰매를 타준다. 연말이 다가오면 평소 잘 만나지 않던 지인들도 송년회를 핑계로 한번씩 얼굴을 확인하며 추운 겨울을 따뜻한 정으로 채운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이내 또 다시 봄이 찾아온다. 이렇게 그 계절에만 만끽할 수 있는, 그 때에만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낭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낭만은 돌고 돌아 반드시 우리를 찾아온다. 똑똑똑. 이번 해에는 어떻게 즐기시겠습니까, 하고.


벚꽃이 어느새 금방 져가고 있다. 하늘위로 분홍 팝콘이 팡팡 터지는 풍경이 일주일도 채 안되어 아쉽기만 하다. 그렇지만 벚꽃이 지면 또 그다음의 즐거움이 찾아오니깐 덜 아쉬워해야지. 이제 곧 철쭉으로 붉은 빛의 언덕이 생기고 담장 넝쿨엔 매혹적인 장미들이 얼굴을 드러낼테니, 남은 봄도 부지런히 만끽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