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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Feb 11. 2024

내 이웃의 지혜

용리단길 들깨미역국 오일제 주인장

단순함과 여백이 있는 삶이 좋아요.


서울에는 무슨무슨 길이 참 많다.

그 처음은 경리단길 이 길은 진짜 경리단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걸 그곳을 다니는 사람들은 알까? 예전에 국군경리단(지금은 재정관리단)이 있어서 그 길을 경리단길이라고 불렀다. 이태원에서 하얏트 호텔을 이어주는 오르막길 그 시작지점에 경리단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한때 유명한 카페와 음식점, 바, 이국적인 술집들이 즐비했었고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인기가 있었다.


그 후로 무슨무슨 길은 서울 전역을 휩쓸면서 여기저기에 그 지역을 대표하는 길들을 만들어냈다. 송파구 롯데월드 근처의 송리단길, 서울숲 주변의 성수동길, 망원동 일대의 망리단길 등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만들어낸 길들은 대부분 특이한 음식들과 카페, 술집들이 밀집해 있고 주변에 산책을 하거나 관광을 할 만한 곳이 있는 지역이었다.


최근에 가장 핫한 골목은 뭐니 뭐니 해도 용리단길이다. 예전에는 돌고 도는 삼각지로 더 유명했는데 요즘은 삼각지보다는 용리단길이라 불린다. 용산역 건너편에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부터 삼각지역까지 이어지는 3개의 길을 따라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섰다. 고급 횟집부터 쌀국수 전문점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한꺼번에 밀집되어 있어서 주말에는 1시간 이상 웨이팅이 기본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 피자, 파스타, 베이커리, 와인, 위스키 바들이 즐비한 그곳에 아주 특별한 음식점이 있다. 내가 정말로 애정하는 들깨미역국 전문점 일제이다. 

오일제 들어가는 문

오일제는 화려한 용리단길 한쪽 끝에 조용히 자리 잡아 전통찻집인가 싶은 외관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들깨미역국과 한식 생일상을 전문으로 하는 순수한 한식집이다.


오일제라는 상호명의 뜻은 주 5일 근무한다는 진짜 그 의미이다. 심지어 평일 점심시간에만 영업을 하고 그마저도 재료가 소진되면 바로 문을 는다. 평일 점심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하기가 힘들다. 매주 금요일 저녁은 생일상으로 운영하는데 한 달 전에 예약을 받아서 전체 공간을 대여해 주는 형식이다.


미역국은 아기 낳은 산모나 먹지  미역국을 예약까지 하면서 먹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정갈한 음식 맛에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을 하고 방문하게 된다.  

오일제의 밥맛을 책임지는 가마솥
오일제의 미역국


일제의 주방은 아주 정겹고 정갈하다. 손님이 들어오면 주인장은 미역국을 끓이고 반찬과 밥을 담고 한상차림으로 손님 앞에 하나씩 가져다준다. 그러고는 미역을 간장에 담가서 드시고 밥과 김치를 먼저 드시고, 국은 반쯤 드신 후에 남은 밥을 말아서 드시면 됩니다. 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설명한 대로 천천히 미역국을 음미하면서 먹다가 보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에 밥상을 받아 들면 이 많은 미역국을 언제 다 먹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어느새 바닥을 보이게 된다. 미역국도 물론 맛있지만 고슬고슬 밥알이 살아있는 갓 지은 가마솥밥이 더 압권이다. 밥과 반찬은 얼마든지 더 주신다.


이 주인장은 어떻게 이런 젊은 열기가 뜨거운 용리단길에 미역국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을 열 용기를 내게 되었을까? 딱 5일만 점심시간에만 일하겠다는 멋진 계획을 어떻게 세우게 되었을까? 생일상이라는 메뉴를 개발해서 딱 한 팀에게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하겠다는 발상은 또 얼마나 기발한가?

오일제의 특별한 저녁 생일상

정성스러운 미역국을 먹으면서 계속 이 주인장이 너무 궁금해졌다. 나도 모르게 젊은 주인장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어떻게 미역국을 팔 생각을 했어요? 요리를 전공했어요?


제가 원래는 학교에서 양식요리를 전공해서 처음에는 양식요리 전문점을 차리려고 했는데 용리단길에 양식집은 너무 많고 그래서 엄청나게 고민을 하다가 한식으로 전환했어요. 메뉴를 고를 때도 너무 고민이 많이 되었었는데 한국사람들이 가장 친근하면서 점심시간에 먹어도 부담이 없는 음식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미역국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양식요리 전공자가 한식을 선택한 것도 대단하고 미역국이라는 생소한 메뉴를 선택하고, 그리고 이 가마솥 밥도 정말 아이디어가 좋은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 가게 임대료도 만만찮을 텐데 모험이었을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여기 청와대랑 국방부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경찰분들이 딱 한 번씩만 와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면 제가 생각하는 삶을 살면서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진짜 장사 잘되시잖아요. 단골도 있으신 것 같던데


하하 맞습니다. 다행히도 좋아해 주셔서 단골도 생기고 안정되고 있어요.


일제 생일상 진짜 기발해요. 생일상도 호응이 좋은가요?


네. 생일상은 인스타그 통해서 전에 예약을 받고 있는데 24년은 4월까지 다 예약이 되어 있어요.


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이런 노하우로 다른 곳에 매장을 더 차리시거나 매장을 확장하셔도 되겠어요.


아.. 아니요. 저는 딱 저 혼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제가 감당할 수 있고 즐겁게 요리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일제로 운영하는 것이고, 저녁에는 다음날 점심 준비를 하고요. 주말에는 여행 다니고 그렇게 사는 게 좋아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내가 즐길 수 있는 정도로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하면서 삶을 재충전하는 여백이 있는 삶...


주인장의 그런 생각을 닮은 오일제는 소박하고 담백하고 깊이가 있는 맛을 선사한다. 정성스럽게 끓인 미역국 하나로 마음까지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주인장의 자신감과 자기만의 색깔이 아주 매력적이다.  정말 매일매일 가고 싶은 곳이다.


언젠가 누군가 용리단길을 방문한다고 하면 꼭 점심은 오일제에서 먹기를... 젊은 주인장과 담소를 나누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인터뷰 연재의 첫 번째 주인공 오일제 주인장님과의 이야기였습니다. 인터뷰는 성공한 사람만 경험하는 일이라 생각되어 우리는 인터뷰이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각자의 의미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누구나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는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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