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등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때로는 등이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배우들도 등연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을 한다. 아무 말이 없어도 표정을 읽을 수 없어도 어떤 장면에서 마주하는 등은 그 인물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끔 그렇게 잊을 수 없는 등을 만나게 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마치 부모님의 등처럼 말이다.
2022년도에 얼굴등등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 전부터 '얼굴'과 '등'의 관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리서치하여 보고 등으로 짓는 표정, 등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지를 워크숍 중간 중간에 사람들과 공유해 보기도 하고 창작노트로 작성해 보기도 하였다. 서울에서 지내면서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어다닐 때면 사람들의 얼굴을 무심코 바라보게 되는데 다양한 얼굴이지만 표정은 하나뿐인 것 같아서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얼굴마저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의 등사진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등을 기록하기 위한 작업으로 시각작가, 설치작가, 싱어송라이터, 독립영화감독,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분들을 섭외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작업들을 이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기였고 나 또한 뒤늦게 코로나에 걸리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의 얼굴은 더 가려지고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었다. 대신 눈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는 점은 좋았다. 신기하다.
작가들과의 의논 끝에 사람들의 얼굴과 등을 직접적으로 촬영하고 등석고를 떠서 오브제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스스로의 자화상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최종적으로는 공연을 하기 위해 움직임과 장면들을 만들어 갔다. 내가 생각한 얼굴과 등의 관계는 표면적이고 학습된 모습의 얼굴과 숨겨져있고 그렇기에 오히려 진실된 등이었다. 공연 내에서 어떨 때는 등만이 보이고 단면적으로 춤이 전개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스크린에 얼굴이 등장하고 동시에 마스크로 가려진 등으로 이야기하려는 무용수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에는 춘천의 자연을 배경으로 춘천의 얼굴과 등을 보여주려고 구성은 하였으나 전달이 잘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2022 상상마당 춘천에서의 공연]
얼굴등등 작업은 그 이후에도 이어져 2023년도에 춘천마임축제 국내초청작에 선정되어 새로운 버전으로 공연하기도 하였고 올해에도 작가 공모를 통해서 새로운 버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자 한다. 우리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 등을 보여줄 수 있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소수이다. 어쩌면 스스로도 자신의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에 만나게 될 얼굴과 등들을 기대해 본다. 얼굴등등.
2023 춘천마임축제 공연(춘천 석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