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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영 Sep 29. 2024

김치

포기김치를 먹었다

김치를 먹지도 않던 사람이


포기김치를 다 먹었다

맛김치를 담갔다

김치를 먹지도 않던 사람이 맛김치를 먹더니

맛이 다르단다

정성이 덜 들어간 맛이란다


김치맛도 모르던 내가 포기김치를 먹더니

김치를 쓴단다

땀이 스민 손가락을

노트 종이 사이사이에 집어넣어,

단어를 넣고 밤새 버무린 뻘건 양념을

골고루 채우고 쑤시고 문지르면서

깊이 있는 포기김치를 쓰겠단다


덜 절여진 배춧잎이 퍽 부러진다

줄줄 새는 양념과 상념을 손가락으로 막고

쓰러진 배춧잎을 다시 이어 문장을 채워보지만

힘을 너무 주었는지 다른 잎이 툭 꺾여버린다


망연자실할 것 없다

배춧잎들이 꺾이고 부러진 배추포기를

도마 위에 올려 먹기 좋게 쓱쓱 썬다

맛김치로 쓱쓱 쓴다

식감은 달라도, 양념은 뻐근한 손목으로 만든 내 양념—

눈은 졸려도 입은 웃는다 침을 꼴깍 삼킨다

김치맛도 모르던 내가

내 양념으로 맛김치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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