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김치를 먹었다
김치를 먹지도 않던 사람이
포기김치를 다 먹었다
맛김치를 담갔다
김치를 먹지도 않던 사람이 맛김치를 먹더니
맛이 다르단다
정성이 덜 들어간 맛이란다
김치맛도 모르던 내가 포기김치를 먹더니
김치를 쓴단다
땀이 스민 손가락을
노트 종이 사이사이에 집어넣어,
단어를 넣고 밤새 버무린 뻘건 양념을
골고루 채우고 쑤시고 문지르면서
깊이 있는 포기김치를 쓰겠단다
덜 절여진 배춧잎이 퍽 부러진다
줄줄 새는 양념과 상념을 손가락으로 막고
쓰러진 배춧잎을 다시 이어 문장을 채워보지만
힘을 너무 주었는지 다른 잎이 툭 꺾여버린다
망연자실할 것 없다
배춧잎들이 꺾이고 부러진 배추포기를
도마 위에 올려 먹기 좋게 쓱쓱 썬다
맛김치로 쓱쓱 쓴다
식감은 달라도, 양념은 뻐근한 손목으로 만든 내 양념—
눈은 졸려도 입은 웃는다 침을 꼴깍 삼킨다
김치맛도 모르던 내가
내 양념으로 맛김치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