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달라진 현재
4-1) 두려움을 마주하는 여자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는 늘어갔지만, 가족과의 관계의 벽은 갈라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육아에만 집중하기를 바랐던 남편은 내가 이루고 있거나 성장하고 있는 모습들을 비난하며 폄하했다.
‘네가 시어머니가 없었으면 그런 걸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이와 시간을 나누어 사용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내 몫을 감당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급기야 술을 먹고 들어와 유튜브로 10분 운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주먹질을 했던 남자와 갈라서기 위해 도장을 찍었다. 이혼을 안 하려는 사람에게 당신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구질구질한 우리의 모습을 지겨워했다.
‘이제 그만 좀 해라.’
어쩌면 나는 주변의 시선이 불편했던 것일까?
아이아빠가 예뻐진 나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건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 번은 분리되고 싶었다. 크리스천인 나를 결혼 전에 갖고 싶어서 결혼을 쉽게 생각한 그였다. 그리고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내가 거절하면 그가 떠날 것이 두려워서 원하지 않는 관계를 허용했다. 바보 같은 선택을 했던 나 자신이 싫어서 되돌릴 수 없는 그 선택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3개월의 숙려기간이 지나고 법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종이 한 장에 도장이 찍혀서 달라지는 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이 되었어도 아이들이 있다 보니 이야기를 나누거나 상의해야 될 부분들은 여전히 있었다. 1주에서 2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만나러 갔고, 그러면서 그 남자도 마주치게 되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전화통화로 대화를 하다가 우리는 서로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가장 많이 사랑해 줄 사람은 누굴까?’
라는 질문에 우리는 같은 대답을 하게 되었다. ‘그 사람’
떨어져 있는 동안 그는 발달장애가 있는 두 아이를 돌보았다. 시어머니가 계셨다고 하더라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서류적인 부분들은 모두 그가 감당했다. 태어날 때 뇌병변 소견이 있었던 둘째 아이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한다. ‘엄마, 아빠’는 간혹 이야기하고, ‘주세요’라는 말 대신에 ‘우’라는 발음을 한다. 출산하고 뇌에 산소가 가지 않아 청색증이 있었고 대학병원으로 옮긴 뒤에도 아이는 몸을 부르르 떠는 증상이 있었다. 당시엔 아이의 장애에 대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다는 것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둘째 아이에 대해서는 장애가 있다고 어느 정도 인정하게 되었으나 조금 느린 줄 알았던 첫째 아이 역시 장애판정을 받아야 했을 때, 그는 무너져 내렸다. 밤 12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고, 그는 첫째 아이 소식을 담담히 전했다. 나 역시 잠결에 담담히 대답했다.
‘예상하고 있었어.’
큰 의미는 없었다. 발달이 느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장애판정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달라질 건 없었으니까. 난 그 아이들의 엄마고, 그들을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해 줄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는 달랐다. 술에 취해 전화했을 그는 나의 태도에 꼬인 반응을 보였다.
‘네가 애들이 장애가 있는 줄 알고 미리 버렸구나.’
그의 창의력에 칭찬을 해주고 싶지만, 어째서 부정적인 해석에 그리 능통한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 화를 내며 전화를 끊는 그의 행동은 못마땅했지만, 잠결에 전화를 받아서 술 취한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오해를 차곡차곡 스스로 쌓았고, 나를 미워하며 1년이 넘도록 아이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빼앗았다.
분노한 그가 무서웠다. 아니라고 말을 해도 믿고 싶은 걸 믿으려 하는 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매일 밤 울다가 기운이 없어졌다.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고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아이들을 책임지고 싶었는데, 난 뭐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정신을 차리고 돈을 벌자.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눈을 감지 않아도 나의 상태가 머릿속으로 보였다. 깊은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 이대로 정신을 잃고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
마음속으로 외치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한다. 겉모습으로는 무표정하게 평온한 듯 행동했다. 가끔씩 폭풍처럼 밀려오는 서러움에 통제하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용히 두 번째 손가락으로 양쪽 눈을 번갈아 만지며 아무 일 없는 척 연기를 했다.
돈을 벌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일상을 살아냈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시행착오의 모든 기록들을 유튜브로 남겼다. 편집은 하지 않았다. 녹화 버튼을 누르고 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아침이나 저녁에 자기 전에 읽은 책을 짧게 나누고 마무리를 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본다면,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창피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로맨스 스캠을 당할 뻔한 일도 있었고, 나이 어린 상사의 폭언과 폭행을 마주하며 퇴사를 간신히 했으니까.
그렇지만 가정폭력을 마주하며 도망쳐 나올 때보다 나는 분명히 단단해지고 있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세상과 마주해 보았다. 맨몸으로 마주한 세상은 괴로웠던 결혼생활과는 결이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세상물정 잘 모르는, 돈을 많이, 그리고 빨리 벌고 싶었던 욕심에 나는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이 늪지대인 줄은 몰랐던 거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일까?’
‘이게 최선이었을까?’
‘내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내가 마주한 두려움은 가정폭력이 시작점이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녹록지 않은 세상과의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고 욕심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 싶은 자아와 마주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손가락질을 상상하며 괜찮은 척 행동하는 거짓된 자아와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이 괴로웠다.
난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