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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Sep 25. 2024

어쨌든 독립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첫 독립을 가능한 화려하게 시작하고 싶었던 나는, 분당에 오피스텔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분당 오피스텔 월세는 보증금 1000만 원에 90만 원 정도였다. 전세 매물이 드문 시기여서 보증금 조정은 할 수 없었다. 그때에도 경제관념이 철저했던 연인, 지금의 남편, 은 얼마를 벌든 월세로 90만 원을 내는 것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라며 뜯어말렸다. 야속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성적으로 그의 말이 맞았다. 그의 강력한 의견에 반박할 논리가 부족했던 나는 눈을 낮추어 다가구 빌라 원룸을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분당 쪽 원룸들은 가격 대비 무척 허름했고 혼자 살기에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가능한 화려한 독립”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았거니와, 당시는 빌라촌에 혼자 사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관한 뉴스도 종종 나오던 시기였다. 이런 뉴스들은 언제나 있는 일들이겠지만 그게 내 현실이 되면 더 귀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역을 변경하더라도 보안이 잘 되어 있는 정돈된 곳으로 집을 찾기로 했다. 분당 중심가로부터 점차 반경을 넓혀 집을 물색하게 되었는데, 비교적 수요가 낮은 변두리로 이동할수록 같은 가격 대비 쾌적하고 깨끗한 집을 찾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아갔다.


그렇게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50만 원이라는 나름 합리적이고 쾌적한 1.5실을 찾게 되었다. 그러자 지금의 남편은 월세 50만 원도 너무 크다며, 안 된다고 나를 막았다. 아니, 보태 줄 것도 아니면서, 마음에 드는 집을 어렵게 찾아 계약하려는데 축하는 못 해줄지언정. 그런데도 연인의 의견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다행히 어머니가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 월세 보증금을 빌려줄 테니, 전세로 바꿔 달라고 해보라고.


집을 소개한 공인 중개사는 보증금을 조정해 달라는 내 요구에, 임대인과 이야기해 보겠으나 전세가 귀해서 쉽지는 않을 것, 이라며 조율에 어려움을 내비쳤다. 그리고 결국 보증금 4000만 원, 월 20만 원으로 합의했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기에 완전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 인생 첫 계약, 고대하던 독립생활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계약금을 들고 부동산에 갔는데, 갑자기 부동산 사장이 그런 말을 한다.


이 물건이 사실, 지금 경매가 진행 중이긴 한데, 내가 이 사모님도 너무 잘 알고, 건축 업자랑 사소한 시비가 붙어 기싸움 비슷하게 그런 거니까, 절대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예? 잠깐만 요…? 경매요?


스물여덟,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자가 부동산 경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불길한 단어였다. 내가 망설임을 내비치자, 부동산 사장은 미소를 띠며 내 손에 끼여진 묵주반지를 바라보더니, 자기 손가락 묵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곧 1억 원 보증보험 증서를 보이며, 이건 1억 원까지 보상할 수 있는 부동산 보증보험 증서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문제 있으면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중개 보증을 약속했다.


나와 함께 있던 남편(당시 남자친구)도 이런 면에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인물이라, 중개사의 말에, 여름이 네가 결정하라며,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위해 수많은 집을 보고, 적절한 가격을 찾아내고 보증금을 조정하고 엄마의 도움까지 받아 독립의 꿈을 이루려고 왔는데, 이 무슨, 껄끄러운 상황인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마음을 눈치챈 중개사는 이런 집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가계약을 걸고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한걸음 물러서 마지막 킥을 날렸다. 주말 동안 고민하고 결정을 변경하면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나는 100만 원 정도의 임시계약금을 걸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부동산 경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소액 임차인, 소액 보증금 보호법 등의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부동산 감정평가사가 된 대학 동창 조 선배에게 이 집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선배는 여름아, 그런 거 웬만하면 계약하지 마. 라며 의견을 주었다.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부동산 경매와 감정평가사 일에 상관관계라든지 경매의 권리관계 분석에 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에, 경매가 그의 전문 영역이든 아니든, 대가 없이 전문가의 시간을 길게 뺏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조 선배의 대답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일이 복잡해질 수 있으니, 하지 마.로 해석되었고, 안 되는 게 아니라 복잡한 거라면 해보고 싶다는 쪽으로 정신 승리를 해버렸다.


이미 걸어놓은 임시계약금과 부풀 대로 부풀어버린 독립의 꿈, 다가오는 이직일, 나는 계약을 감행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나오는 경매를 공부하기도 했는데 그때 정확히 알게 되었다. 주택에 가압류를 행사한 권리자가 강제경매를 진행했을 때 강제경매가 진행되기 전 입주한 소액 임차 세입자들은, 임대차 보호법에 의해, 선순위 근저당권들에 앞서 권리를 인정받고 최우선 변제자로 보증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나는 강제경매 진행 후 임차했고 그 보증금도 4000만 원이나 되었기 때문에, 전혀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계약을 해버린 것.


하지만 무지함이 긍정이 된 스물여덟 여자는 그 독립생활에 만족했다. 혼자 살기 아늑하고 쾌적했던 새집은, 주방과 큰 방이 분리되어 있었고 작은 발코니도 있는 집이었다. 이직일 이주 전, 이사를 마친 나는 한쪽 벽을 레몬색 페인트로 칠했고 화이트 퀸 침대와 화장대 겸용 테이블, 화이트 철제 선반 등의 가구를 배치했다. 레몬 컬러 벽에는 고상한 고양이가 그려진 블랙 프레임의 작은 액자들을 여러 개 걸었다. 청아하고 포근한 하늘색 침구도 준비했다. 그리고 이런 독립 샷을 인테리어 카페에 올려 자랑도 했다. 가까이에 살았던 또래의 회사 동료들과 함께하는 퇴근 후 생맥주와 치킨은 독립의 자유를 고스란히 내 것으로 느끼게 했다.


어머니는 용인시 죽전동에 있던 나의 1.5실을 지금까지도, 네가 분당 오피스텔에 살 때,라고 말한다. 어머니에게 내 방을 격상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용인 죽전동은 분당 오리동과 근접했고 오피스텔과 1.5실 빌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눈에는 세련된 오피스텔처럼 화사했던 내 첫 집이, 품 안에 자식을 세상에 내보냈던 불안에서 생각보다 더 잘 사는 딸을 보고 안심을 얻었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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