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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Oct 16. 2024

다르게 살기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하와이에서 1년을 살고 돌아왔을 때 우리의 재정 상태는 0에 가까웠지만, 맞벌이를 이어가며 한 사람의 급여를 전부 저축할 수 있었다. 우량 주식 투자로 저축액을 불려 갔고, 분양받은 아파트 대출도 성실히 갚아 나갔다. 사교 활동이나 치장에 지출이 없으니 자산은 그런대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몇 년간 맞벌이를 더 하면서 여느 30대처럼 몇 년 후 서울권의 어느 정도 괜찮은 지역에서 30평대 아파트에 살며 아이를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누군가 정해놓은 루트를 따라 경주하듯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처음으로 인생의 경로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이전처럼 급여 생활을 이어간다면 몇 년 안에 현재의 환경보다 더 나은 생활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급여가 멈추면, 지금의 아파트와 평범한 소득 수준에서 적당히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몇 년 안에 더 나은 지역에서 살게 된다면 그 이후에는 또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가야 할까? 더 큰 집, 좋은 차를 향한 목표일까?


내 삶을 채워주는 것은 지금도, 미래에도 경쟁 우위에서 오는 만족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진 것에 만족하며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은 어떨까?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안분지족의 마음도 가지지 못했다.


남편은 내게 5년간 시간을 줄 테니,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전에는 남편이 비슷한 말을 할 때마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성공과 인정,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높은 수입이라고 당당히 답하기도 했었다. 원하는 일을 이뤘을 때 그다음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시기에 처음으로 나는 나의 직업과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직업이 꼭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야만 하는 걸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나? 그 일을 직업으로 했을 때 나는 행복했나? 너무 목표 지향적으로 살지 않았나?


만약 글쓰기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면 나는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수입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에서의 일은 어렵지 않을까? 수입이 높은 직업보다 안정적인 직업은 어떨까? 큰 파도가 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 회사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삶을 그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 먼저 거주지에서 안정을 찾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숱하게 다녔고 집이 주는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았던 나는 온전한 내 집에 대한 갈망, 편안하고 고요한 공간에 대한 막연한 꿈이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서울로 올라가려던 목표를 변경해 가까운 곳에 땅을 사서 집을 짓자고 했다. 남들과 경쟁하는 삶이 아닌, 오롯이 우리만의 행복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고.


남편 역시 아파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공동생활과 엘리베이터가 불편하다며 늘 불만을 표현했고, 아파트가 제공하는 커뮤니티나 편의시설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사자는 말에 생각보다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나는 먼저 땅을 구하는 일에 집중했다. 머지않아 우리가 살고 싶고 살 수 있는 땅 중에서 꽤 마음에 드는 집터를 구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라는 표현은 사실 맞지않다. 이 일은 오랜 시간 지속해 온 우리의 막연한 꿈이었고, 사실 10년 넘게 전국의 수많은 땅을 보러 다녔던 경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집을 지을 땅을 구했으니 바로 설계를 시작했다. 설계 기간은 보통 4~6개월 정도가 소요되지만, 우리는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설계자가 법규를 놓쳐 설계를 초기화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그 사이 러우전쟁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다. 우리의 예산 집행에 큰 위기가 닥쳤고, 자재 수입 상황이 불확실해지면서 집 짓기를 맡기려던 시공사는 견적을 낼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


어렵게 결정한 시공사는 사전 견적 대비 1억 이상 상승한 계약서를 청구했다. 원자재 상승이 이유였기에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공사를 지체할수록 다양한 기회 비용이 손실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시공이 진행되면서 견적을 훨씬 초과하는 비용이 청구되었고, 우리가 준비한 건축 자금은 점차 바닥을 지나 파산 직전까지 이르고 있었다. 나는 시공사 대응 등 공사 관리를 할 뿐만 아니라 자금을 조달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때 마치 구세주처럼, 10년 전 함께 일했던 회사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새로 입사하게 된 팀에서 콘텐츠 파트를 맡아 줄 수 없겠냐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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