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일지
나는 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걷기로 했다.
꽃잎 위를 조심조심, 발끝으로 더듬으며 걸었다.
바람이 조금 셌고, 햇빛은 평소보다 눈부셨다.
그런 날에는 나는 굳이 날지 않는다.
꼭 날아야 할 이유가 없을 땐, 그냥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세상은 나에게 자꾸 물어왔다.
“언제 꿀을 모을 거니?”
“오늘은 몇 송이 채웠어?”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어때?”
가끔은 걷는 속도가
내 마음보다 빠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걷기를 잠깐 멈췄다.
풀잎 사이에 앉아 바람을 느꼈고,
누군가 스쳐간 꽃향기를 맡았고,
이름 모를 작은 새가 날아가는 걸 바라봤다.
꿀을 채우지 못한 하루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나는 이 시간을 꿀처럼 느꼈다.
오늘도 살아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냥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