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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Sep 16. 2024

떠날 결심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정 선배를 따라간 곳은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곳에는 음악 감독, 제작 감독, 소속 성우들, 엔지니어들, 그리고 애니메이션 제작팀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오랜 시간 나의 롤모델이었던 김유미 작가를 만났다.


김유미 작가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를 만난 이후 오랫동안 회원가입할 때 '존경하는 사람' 란에 그의 이름을 적을 정도였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힘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전의 선배들보다 책임감이 강했고 일도 많이 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작가 그룹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늘 나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김유미 작가 덕분에 사무실은 긍정적인 긴장과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었다.


방송계에 남는다면 그분처럼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에 들었던 칭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유미 작가 팀의 서브 작가였던 최 작가의 말이었다. 최 작가는 나에게, '유미 언니는 원래 완벽주의자라 누구에게도 일을 맡기지 않아. 그런데 너에게는 일을 맡기더라. 처음 보는 일이야. 너를 진짜 믿는 것 같아.'라고 구체적인 칭찬을 해주었다. 나는 영상 제작팀과 김유미 작가 팀이 함께한 몇 편의 영화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에도 김유미 작가 그룹과의 유대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막내 작가는 원칙적으로 작가 팀 소속이었지만, 제작사에 상주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프로덕션의 이사이자 제작 피디였던 황 피디는 매일 점심을 함께하는 동료이기도 했다. 그는 상주하는 나에게 방송 외의 여러 가지 글쓰는 일을 맡기곤 했다. 작가 팀과 계약된 일 외에 추가적인 작업은 새로운 계약 하에 진행되어야 했지만, 그런 개념이 없던 나는 일을 주는 대로 했다. 작가 팀 선배들은 내가 하는 일을 보며, 황 피디가 페이도 없이 그런 일을 시키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주어진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방송사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다큐멘터리 기획안, 황 피디가 연출하고 싶은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관공서에서 의뢰받은 기획 구성안까지 허들은 높았지만, 일하는 기쁨과 배움이 있었다.


김유미 작가 팀이 몇 편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재계약 시점이 되었다. 며칠간 사무실에 냉기가 감돌았고, 결국 김유미 작가 팀은 프로덕션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아마도 인건비 문제로 황 피디와 김유미 작가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황 이사의 제안으로 회사에 남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결국 고사했다. 여전히 내 급여는 백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정규직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는 지속 가능한 생활을 만들어내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시기 나는 방송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방송 작가로서의 삶은 몇 년간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에 비해 경제적 안정이 부족했다. 멋진 선배들은 대부분 골드미스이거나 이혼한 상태였으며, 일과 연애를 병행하며 개인 생활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 일을 지속하려면 나도 그 생태계에 머물러야 했다.


선배들은 멋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시간을 오롯이 가질 필요가 있었고 저축도 하고 싶었다. 멋도 내고 연애도 하고 여행도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었다. 당시 내 급여로는 용돈과 교통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최소 5년을 투자해 메인작가가 된다 해도 나의 미래가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나는 더 나은 처우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분야로 이직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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