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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여름 Sep 13. 2024

돈 벌며 배운다는 것

결국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첫 직장은 프로그램 종료와 함께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송 피디와 계속해서 일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성장을 위해 그동안의 감사를 전하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나는 구인 사이트를 통해 여러 프로덕션에 이력서를 넣었고, 합정동에 있는 한 프로덕션에 합격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정식으로 일을 배우며 사회생활의 '매운맛'을 처음 체감했다. 책임감과 압박감, 그리고 실질적인 업무 경험이 모두 새로운 시련이었다.


'돈을 받으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실제 업무 속에서의 배움이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자료를 조사해 대본을 쓰고, 섭외와 촬영, 편집까지 모두 직접 담당해야 했다. 모든 과정이 나의 책임이었고, 결과도 온전히 나에게 돌아왔다. 그 이전의 단순한 작업 방식이 계속되었다면 내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켰다. 당시 공중파 방송을 메인 시장으로 본다면, 내가 있었던 케이블 방송은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마이너 시장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경험 덕분에,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아카데미를 나오지도 않았던 내가 공중파 방송 프로덕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 번째 회사는 제작비를 자체 충당했던 이전 프로덕션과 달리 정식 작가 그룹이 있었고,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방송작가로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작가 급료는 회당 20만 원으로 올랐지만, 나의 보직은 메인작가에서 막내 작가로 초기화되었다. 좋게 보면 성장의 기회가 생겼다는 의미지만 현실은 나의 일이 12배 정도 많아진 것이다. 


막내 작가는 방송 자료 준비, 촬영 보조, 출연자 관리 등 모든 잡무를 도맡아야 했다. 작은 일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는 자리였고, 실수는 더 많은 업무와 부담으로 돌아왔다. '입봉'을 해서 메인작가가 되기까지 방송 작가의 수입은 적었고, 업무량은 살인적이었다. 입봉에 성공한 메인작가는 두세 개의 프로그램을 맡으며 주당 몇백만 원의 원고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의 경제적 혜택에 비해 나의 상황은 끝없이 초라했다. 자정까지 일하며 월급 80만 원을 받는 막내 작가에게는 그 이야기가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메인작가는 여러 프로그램을 맡으면 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간이 적었다. 본 촬영일이나 편집일에 잠깐 모습을 보이는 정도였다. 그들은 주로 중요한 순간에만 나타났고, 대부분의 세부 작업은 막내 작가들이 처리했다. 막내 작가는 프로그램 전 과정을 알고 있어야 했고, 24시간 대기하며 관계자 누구의 전화든 받아야 했다. 그래도 언젠가 메인작가가 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그 희망이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당시 방송계에서는 극한 업무와 선배 작가들의 괴롭힘으로 자살한 막내 작가들의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나 역시 그 고통이 너무 커 자주 눈물을 훔쳤다. 과다한 업무량도 힘들었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더 큰 어려움이었다. 특히 선배 작가들의 무리한 기대와 요구는 나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점심시간도 없이 일하다가 간신히 밥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전화가 오거나, 메인작가가 불시에 나타나곤 했다. 어느 날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파 눈물이 흐르자, 메인작가는 '대체 누가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거냐?'라고 물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서러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말에 서러움이 터져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임신 중이던 메인작가는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가야 했고, 귀가할 때도 택시까지 배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불편함과 감정적 피로는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 팀에서의 막내 작가 생활이 가장 힘겨웠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한에 몰린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그만두는 결정을 내릴 용기조차 없는 미숙한 존재였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없이 매일을 견디기에 급급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자기 결정권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종료될 기미가 없던 그 프로그램에서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허우적댔다. 다행히도 작가 팀 서브 작가였던 정 선배의 결단 덕분에 그 고통의 끝을 맺을 수 있었다.


평범한 야근을 하던 어느 날, 회의에서 결심한 듯 정 선배는 나에게 당장 짐을 챙기라고 했다. 평소와 다른 단호한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댔지만 곧 선배의 단호한 지시에 따랐다. 선배는 자신의 자료집을 모아 품에 안고 "여름이, 너도 모두 챙겨"라고 말하며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책상에 꽂혀 있던 자료집과 대본, 파일철들을 챙겨 선배 뒤를 따랐다. 회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의 결단은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 후 나는 정 선배를 따라 세 번째 회사로 옮겼다. 새로운 시작은 여전히 두려웠지만, 적어도 그곳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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