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본아 Nov 21. 2024

06. 신이 계시다면, 제발

부디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더는 내 욕심만 부릴 수 없었다. 몸도 안 좋아지고, 성과는 전혀 나질 않고, 모아둔 돈도 점점 바닥이 나는 상황이었다.     

안 되는 거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고민 끝에 나는 엄마에게 작가가 되는 걸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엄마가 다소 놀란 듯 내게 반문을 했다.     


“갑자기 왜?”     

지금이라도 접는다고 해서 다행이구나. 이런 표정일 줄 알았는데 엄마는 굉장히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상상했던 것과 달라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왜긴, 안 되니 포기하는 게 맞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게 내 현실인 걸. 보란 듯이 꿈을 선택했지만 지금의 나는 방구석 루저라는 걸.     

“안 되는 거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하잖아.”     

내 입으로 현실을 인정하는 말을 뱉자 서러워졌다. 마치 내 눈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엄마는 내게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서 휴지 속에 얼굴을 파묻고 울면서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퇴사 후에 곧장 작가 지망생이 되기로 결정하고,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음에도, 

꿈을 이루어 보겠다고 혼자 고군분투했던 나의 시간들.     


글을 쓰며, 사람에게 상처받은 걸 조금씩 지워낼 수 있었고, 언젠가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단 그 희망이 내겐 버팀목이었다.      

미래가 두려웠지만, 독학하며 스스로가 글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조금만 더 버텨서 웃을 날만을 생각했는데.     

그만둔다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고, 엄마 앞에서 엉엉 울었다. 차라리 후회가 없다면 이렇게 미련이 남지도 않을 텐데, 모든 걸 쏟아 부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을 텐데.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것 같아 패배감이 들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런 나를 엄마는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잠시 뒤에 내가 진정이 되자 엄마는 내게 다가와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조금만 더 해보자.”     

내 꿈을 가장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고마운 사람, 엄마는 내가 무료연재 플랫폼에 올린 내 작품을 제일 먼저 봐준 내 첫 독자였다.     

친구들이나 지인에게는 말을 못 꺼냈는데, 쑥스럽기도 해서 나중에 결과가 좋게 나오면 그때 공개하고 싶어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엄마에겐 공유를 한 건 걱정을 하는 것 같아서, 이런 걸 하고 있다며 링크주소를 알려준 것이다.     

그때부터 엄마는 내 작품의 첫 관심작을 눌러준 독자로서 업데이트가 되는 매회를 읽고 꼬박꼬박 하트를 눌러주었다. 그러며 다른 작가들의 웹소설 작품도 보며 함께 연구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엄마가 보기엔 너무 재밌어. 예전에는 전개가 너무 느렸는데 이번에 쓰고 있는 건 드라마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면서 본다니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고 곧 너를 알아봐줄 사람들이 생길 거라고, 유명한 배우들도 오랜 무명 생활을 극복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냐면서.     

다시 한 번 해보자고, 엄마는 내게 용기를 주었다.     


“본선도 진출하고 그랬잖아.”

“그건 뒷걸음질 치다가 얻어 걸린 거겠지.”

“네 진가를 알아봐 줄 날이 꼭 올 거야. 엄만 믿어.”     

나를 응원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부족하고 안쓰러운 자식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처음으로 그런 질문을 했다.     


“엄마는 왜 내가 작가되는 거 반대를 안 해?”     

심지어 엄마가 내게 글을 쓰라고 권유를 했고, 그로 인해서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렇잖아, 내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냐. 그럴 시간에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라.      

일반적인 엄마들의 반응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단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네 나이 아직 한창이니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작가 될 수 있는 것만 생각하라고.     


이런 생각 못난 거 알지만, 

내가 부모를 걱정시키는 자식이라서, 

엄마와 아빠는 내 꿈을 지지하는 척 하는 건 아닐까.      


건강이 안 좋아지자 내 자격지심이 더해져, 나를 응원하는 부모님의 진심을 의심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차라리 나를 욕하고 비난했다면 마음이 편안했을까. 그랬다면 내가 빨리 이 모든 걸 내려놓을 용기가 생겼을까. 

머릿속이 복잡한데 엄마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네가 좋다니까.”

“어?”

“글을 쓸 때 행복하다고 했잖아.”     

내가 얼떨떨하게 수긍하며 고갤 끄덕거리자, 엄마가 다시 손을 꼭 잡고 내게 편안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우리 딸이 작가되는 게 꿈이라고 하니까, 그 꿈을 이룬 걸 보면, 엄마는 그게 너무 행복할 것 같아.    


자식이 하는 걸 전적으로 믿어주는 나의 엄마. 작가로서의 역량과 가능성을 인정해주며 희망을 주는 내 1호팬.     

내 꿈이 어느새 엄마의 꿈이 되었다.     


“그니까, 조금 더 힘내보는 거야.”     

고마우면서 죄스러웠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그 믿음을 온전히 증명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포기하는 것에 대해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는 만약 건강 때문에 그만두려고 하는 것이라면 건강을 회복한 다음에 생각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 동의를 했다. 우선은 이런 몸 상태로는 글쓰는 것도 둘째 치고 구직 준비를 할 수 있지가 않을 정도였다.     

일단은 건강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두자.      


꼭 나을 거란 비장한 마음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통증으로 괴로워했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2021년 12월 31일이 되었다.     

연말이라 집에서 가족끼리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내가 구토를 하게 되면서 외식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남동생 S는 결혼을 했고, 미혼인 나는 부모님과 반려견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2021년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삼겹살을 먹었는데 다행히 구토는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 반려견까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홀로 소파에 앉아 멍하니 연말시상식을 보다가 곧 TV를 껐다.     

방으로 가 컴퓨터는 트니 11시 30분이었다.     


‘아, 또 나이를 먹네.’     

바탕화면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책상 아래로 눈물이 무겁고 빠르게 추락했고 잇새로 울음이 터졌다.  괜히 부모님을 깨울까 입을 틀어막고 한참을 울다가 문득 책상 위에 놓인 마리아상과 예수상이 보였다.     

자애롭게 팔을 벌리고 모든 걸 포용할 것 같은 마리아상. 못에 박혀 힘없이 고개가 늘어져 가시관을 쓰고 있는 예수상.     

눈물을 대충 옷깃으로 훔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엄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데, 딸인 나는 냉담자이다. 작가지망생 길을 걷다가 병자가 되며 성당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성당에 안 다니면서 기도하는 건, 신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따질 입장은 되지 못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절박하게 기도했다.     


신께서 존재하신다면, 

가여운 이 인간의 말을 들어주소서. 

제가요, 독하게는 못 살았어도 

남에게 독사 같은 짓은 하지 않았거든요. 

호구처럼 살기도 했지만 사람을 해코지하고 그러진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긴데, 실제로 저렇게 기도했고, 나름 선량하게 살아왔다고 신께 강력하게 어필하고 싶었나보다. 어쨌든, 그때의 나는 엄청 간절했기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할 수 있는 건 초월적인 존재에게라도 빌어보는 것이니까.     


만약 불행한 팔자가 운명인 사람이 있다면, 혹시 그게 저라면, 노력해도 제 미래가 지금과 같다면 이 자리에서 부디 목숨을 거둬가소서. 원망하지 않겠나이다. 다만 운명이 바뀔 수 있고 기적이란 것이 제게도 올 수 있다면, 한 번만 제게도 기회를 주소서.     


어둠 속에서 숨죽이다 기도하며 결국 나는 조용히 오열했다. 어느새 눈물과 콧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59분이었고, 훌쩍이는 사이에 곧 12시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얼룩진 눈물과 함께 2022년 새해를 맞이했다.     


이전 05화 05. 부모의 아픈손가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