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지만 꿈을 향해 GO!
내 오랜 꿈은 바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어릴 땐 공상하는 걸 좋아했고 내 머릿속의 상상이 글로 표현되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이야기가 기록되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막 벅차올랐다. 하지만 내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이기엔 현실의 벽은 내게 높았다. 문예창작학과에 다니던 내가 졸업하기도 전에 아빠가 퇴직했다.
당시 아빠가 50대 중반이니 다소 이른 나이에 퇴직했고,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친할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져, 장남인 부모님이 모셔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니 꿈 타령만 할 수 없기에 취업을 선택했다.
가장 큰 부분은 내가 등단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만약 스스로도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아마 부모님이 반대를 하더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내가 그럴 만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회인이 되어 퇴근해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그래, 이게 맞아’라며 애써 내 꿈을 외면하며 직장인으로 살려고 노력도 했다.
내 꿈이 불쑥 올라올 땐, ‘너 따위가 무슨 작가야’ 한없이 비하하며 그 불씨를 꺼보려고 애를 썼다. 그럴수록 꿈을 이루지 못한 열망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언제나 늘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역시 내가 그렇지, 뭐.
인정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도 참 녹록치 않았다. 업무 프로세스는 익히면 되었지만 문제는 인간 관계였다.
상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게 된 것이다.
내가 선임이 되었을 때 팀을 이동하게 되었다.
팀이 이동이 되기 하루 전에 Y팀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걱정을 했지만 나름 괜찮았다. 친절했고 적응이 되려던 무렵에 Y팀장은 퇴근 후 나를 앉혀놓고 뜬금없이 본인 개인사를 털어놓았다.
자신은 이혼했고
아들 하나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신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고.
그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울컥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도 친할머니 똥오줌을 다 받아내는 병수발을 했고, 아빠는 이른 퇴직으로 집에서 쉬고 있었으니까.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도움 되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Y팀장에게 나 역시도 개인적인 부분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Y팀장은 잘 해보자고 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내게 건넸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넌 팀장으로 진급될 수 있다고.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사생활을 공유해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Y팀장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내 사적인 부분을 알고 나서 함부로 대했기 시작했다.
친근하게 굴었다가, 다음 날이면 냉랭하게 굴었다. 우리 잘 하자, 파이팅! 이렇게 한 지 30분이 안 되었는데 내게 짜증을 내는 그런 식의 날들이 많아졌다.
나를 세워두고 본인 일을 처리하며 투명 인간 취급을 하고, 심지어 아랫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없이 뱉었다.
표정이 안 좋으면 ‘왜? 기분 안 좋아?’ 이런 식으로 비꼬았고, 또 다음날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 팀장이 되려면 이 모든 걸 참아야 이룰 수 있단 말도 안 되는 말로 본인의 행동을 포장했다.
나는 Y팀장의 오락가락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선임의 위치이기에 이 모든 분풀이를 이유없이 당해야만 했다.
그게 반복되자 아침에 눈 뜨는 게 괴로웠다.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차라리 사고가 난다면, 회사를 안 갈 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걸 참아내던 어느 날 출근하려는데 심장이 고장 난 것처럼 뛰었다.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날 회사를 결근했다. 더 이상 Y팀장 밑에서 일하다간 사단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음날 사직서를 쓰러 갔다.
회사에 가서 나를 괴롭힌 팀장 옆에서 조용히 볼펜을 쥐었다.
사직 이유를 쓰려는 내 옆에서 팀장은 끊임없이 힐끔거리며, 계속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퇴사 이유는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만두는 거라고 끝까지 나를 압박했다.
지금 같았으면 ‘팀장의 갑질로 인해 퇴사’라고 적었을 것이다. 근데 너무 당하다 보니 넌덜머리가 나서 개인 사유라고 퇴사 이유를 썼다.
그제야 Y팀장은 만족스럽다는 듯 사직서를 빼앗아가듯 낚아챘고 떠나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선임들 잡는 팀장으로 유명했다. 쥐 잡듯이 잡아서 그 팀장 밑에 있던 선임들 중에 퇴사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소문나 있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그렇게 괴롭혀 퇴사하게 만든 것이다. 나 역시 퇴사한 많고 많은 선임들 중 한 명이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진짜 이불 속에 파묻혔다. 아무 의욕도 없고 밥만 먹고 누워있었지만, 그 와중에 부모님께 못난 모습 보이는 것 같아 면목이 없었다.
나는 분명한 피해자이지만,
남들에게 보일 땐 그저 퇴사자일 뿐이고,
상처 받은 감정과 현실을 떠안으면서.
동시에 죄책감이 드는 건 오직 내 몫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야, 정신 차려.’라고 질책했지만, 나의 몸은 손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도 간신히 하는 행동이 되어 버렸다.
상처에 갇혀 먼지투성이 같은 나날을 보냈다. 어김없이 초점이 없는 동태 같은 눈으로 흐느적거리며 집에 있는데 엄마가 내게 제안을 했다.
지금 쉬고 있으니까 하고 싶었던 글을 써보라는 거였다. 처음에는 ‘어이쿠! 내가 무슨 작가야!’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작가 그게 뭐 내가 되고 싶다고 되냐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작가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말도 안 된다고 하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비록 회사를 갑작스레 그만둔 건, 생각해보면, 네 꿈을 펼칠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미래에 내가 작가가 되는 모습을 떠올렸다. 나의 이야기가 활자로 숨 쉬고 그것들이 종이에 담겨져 책이 되는 것.
상상만으로도 내 영혼 깊숙한 곳이 진동되었으며, 꼭꼭 묻어 두었던 꿈의 씨앗이 숨을 쉬자 한 줄기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현재 이 상처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물론 걱정도 되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 때문에 선뜻 마음먹기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 번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무모해 보일 수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꼭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하고 싶으니까!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고, 내 글이 완성되어 책이 되는 걸 보고 싶고, 나이가 들어서 저 세상을 가게 될 때까지 글을 쓰다가 가고 싶고…….
물론 남들에겐 가로등의 불빛에 마구 달려드는 나방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설령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게.
노력이라도 해보고, 포기를 하자.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며 적금을 들어 모아둔 돈도 있었고, 아빠도 새로운 직장을 구해 일하고 있을 때였다.
무엇보다 엄마와 아빠 모두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네가 해보고 싶은 걸 하라며 내 길을 응원해주었다. 그게 용기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비록 상처투성이였지만 작가란 꿈을 위한 준비를 돌입했다.
그렇게 나는 작가지망생이 되기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