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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본아 Nov 07. 2024

02. 내 몸이 무너지다

두려움에 잠식된 나의 하루


“오늘 먹고 싶은 거 있어?”     


2021년 10월의 나는 이 당연한 엄마의 질문이 무서웠다. 왜냐면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숙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음식 섭취를 하면 소화가 되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몇 시간 동안 가슴을 치다가 구토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속에 있는 음식이 다 게워지면 그나마 괜찮았다. 문제는 메슥거리며 몇 시간 있다가 구토를 할 때 겪는 증상이었다.     


머리에 쥐가 나고, 숨을 쉬면서도 답답하고, 목이 찢어질 것 같은 기침을 하다가, 결국 울렁거려서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다.     


변기통을 부여잡고 사투를 하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으면 얼마 되지 않아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된다.     

구토 횟수는 점점 잦아졌고, 심할 땐 먹는 족족 다 토했으며, 몇 모금 간신히 마신 물조차도 위액과 함께 게워냈다.     

역류성 식도염 약을 복용했지만 소용없었다.



심한 다이어트 같은 거 한 적도 없었다. 

섭식 장애가 있지도 않았다. 

잘 먹으며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증세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뭐 먹고 싶지가 않아. 아무 것도.”     


편식하는 음식 없이 다 잘 먹었고,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을 느꼈으며, 먹는 게 좋아서 요리를 해서 먹는 게 소소한 기쁨이었다.     

어릴 때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세상은 넓고 그만큼 맛있는 게 넘쳐나니, 그걸 다 먹어보고 싶으니까.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싶다.     


그 정도로 먹는 게 진심인 내가 ‘먹는 행위’ 자체가 무서워진 것이다. 먹어서 속이 불편한 것보다는 차라리 굶는 쪽이 오히려 편안했다.     


“사람이 안 먹고 어떻게 살아.”     


그런 내가 엄마는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음식을 섭취하고 약을 복용해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며, 엄마는 매일 같이 아픈 자식을 위해 위장에 부담이 안 되는 식단으로 식사를 차려주었다.     


엄마의 정성 가득한 상차림을 보고 기쁘지 않았다. 오늘은 제발 토하지 말아야 된다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젓가락을 들었다. 그렇게 반 공기도 채 되지 않은 소량의 밥과 반찬을 먹으며 조바심 속에서 식사를 했다.     


그럼에도 구토는 며칠 안 되어 또 시작됐다.      


변기통 가까이 얼굴을 밀어 넣고 게워내는데, 제일 힘든 건, 구토할 때 식도에 음식물이 차오르다 중간에 멈출 때가 있다.  


그때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든다. 최대한 주먹으로 가슴을 세게 내리치고 목에 잔뜩 힘을 주며 구토를 했다.     


힘겹게 모든 걸 게워내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물을 내리고 잠시 추스르고 난 뒤에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면.  또 다른 것과 마주하게 되었다.     


또 토했어? 괜찮아?”     


그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엄마의 얼굴이었다. 말없이 끄덕이면 엄마는 혹시 본인의 음식 때문에 토한 게 아닌지 자책하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픈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었지만, 뭔가 들키지 말아야할 비밀을 내보인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조용히 구토하는 법을 터득했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 화장실에 조용히 들어가 물을 틀어놓는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다 게워내고 변기에 물을 내리는데 내가 초라한 것 같아 기분이 처참했다.     


몸이 무너지며 나의 시간들도 함께 부서졌다.    


 




몸의 이상증세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자주 가래가 들끓는 건 기본이고, 계속 구토를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새벽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고통의 패턴은 거의 일정하게 찾아왔다. 밤 12시부터 새벽에 통증이 심했고,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다.     


우선 혀가 잔뜩 부풀어 올랐고, 

거울로 확인할 때도 목젖에 닿을 정도였으며, 

식도 쪽에서부터 침을 삼킬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표현을 하자면, 목 안쪽을 철사로 긁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호흡하기도 힘들었으며, 그런 상태에서 누우면 진짜 질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몸부림을 치다가 날밤을 새기 일쑤였다.     


아침에 간신히 쪽잠을 자고 일어나서 음식을 섭취하면 토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기력이 쇠해서 잠들고, 일어나서 저녁 먹고, 새벽에 통증으로 잠을 설치고.     


이 패턴이 2021년 하반기까지 계속 되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걸 깨닫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녔다. 구토를 하니까 역류성 식도염 약을 복용했고, 목이 아프니 이비인후과에서 약을 처방해왔다. 


하지만 복용을 해도 전혀 차도가 생기지 않았다.     


괜찮아서 희망을 가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아프고…….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똑같은 고통이 반복되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그게 잘 안 되었다. 건강이 무너지니까 정신적으로 엄청 혼란스러웠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공포에 압도되다 보니, 조금만 아파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어느새 나의 하루 목표는 ‘아프지 말기’가 되었다.     


내가 왜 병들게 되었는지 ‘진짜 원인’을 모른 채.     


불행을 삼키며 자책하는 게 이젠 습관이 되었다. 잿빛이 되어 버린 내 시간은 왠지 모르게 희망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불행에 갇혀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까 두려운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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