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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본아 8시간전

04. 나는 30대 캥거루족

노력했음에도 남은 건 아픔 뿐이다.


내가 글로서 하고 싶은 분야는 드라마였다. 물론 대학교에 다니며 중간에 동화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수업도 듣고 졸업 작품으로 출품하기도 했다. 졸업을 하고 나서 취직을 하면서 드라마 대본 공모도 해보고, 동화 공모전에 도전했었다.     


사실 나는 장르 구분 없이 글쓰기라면 뭐든 해보고 싶다. 하지만 전업 작가가 되기로 한 이상 한 가지 분야를 정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거 하다가 안 되면, 저거 해보고 하다간 뭣도 안 될 수도 있으니까.     

고심 끝에 드라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되려면 단막극 당선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보조 작가부터 시작을 해야 했다.      



직장 내 갑질을 당한 터라, 

더 이상 인간관계로 상처 받고 싶지 않았기에, 

드라마 보조 작가를 하기엔 겁이 났었다. 



혹시라도 또 못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사람 때문에, 간절히 원했던 꿈을 포기할까 두려웠다.  그러다 우연히 웹소설이란 장르를 알게 된 것이다.     


호기심에 읽어봤는데, 눈에 단번에 읽히는 게 언뜻 드라마 대본과 비슷해 보였고, 그 당시에 웹소설이 영상화가 되는 시점이었다.     

내 소설이 원작이 되어 영상화가 될 수 있고, 또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서 글을 쓸 수 있다니.     


유레카! 바로 이거야!      


웹소설은 무료로 연재할 수 있는 플랫폼도 있고, 작품이 괜찮으면 연재 제의가 오거나, 아니면 출판사에 투고를 할 수 있었다.      


순수 문학보다는 기회가 많아 보였고, 

무엇보다 내 소설이 ‘영상화’가 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진짜 웹소설의 ‘웹’자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다. 대본을 쓰듯이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웹소설만의 작법이 따로 있었고, 그걸 모르고 썼으니, 당연히 공모전도 떨어지고, 무료 연재 플랫폼에 올린 작품 조회수도 처참했다.     

쉽지 않을 걸 예상했지만 낙담이 자동적으로 되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모르지만, 모르는 건, 알아 가면 돼.     


그때부터 도서관에 가서 웹소설 관련 작법서를 잔뜩 빌려왔다. 유명하다는 웹소설 작품도 읽어가며 분석도 했다.     

읽고 공부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실전이었다. 이론을 접목해서 내가 직접 쓰려니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쓰고 지우고, 멍을 때리다가, 지우고 쓰고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밥을 먹고 글을 쓰는 일상이 계속 되다 보니까 매너리즘이 왔다.     

계속 드는 생각이 ‘이게 맞나?’였다. 분명히 내가 원하는 일인데 의문이 들고 늘 두려움이 따라오는 나날들이었다.  막막한데, 원하는 대로 풀리진 않고, 포기해야 되나 싶을 때! 내게도 드디어 소중한 결실이 찾아온 것이다!     


한 웹소설 공모전에 본선진출을 하게 되었다. 비록 명단이 추가되어 진출된 것이지만 글로서 이뤄낸 나의 첫 성과였다.     


물론 그해에 나는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 조금만 더 하면 작가로서 열매를 맺을 수 있어. 노력하면 결과로 보상받을 수 있단 희망과 함께 나아가려고 했지만.     


그때부터 쭉쭉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본선 진출이 된 작품은 컨택오지 않았고, 새로운 작품으로 공모전을 도전했지만, 계속 건강이 안 좋아지게 되며.     

2021년 하반기에 모든 게 올 스톱이 되었다. 이렇게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많아지자 나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내가 꿈을 위해 감내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안 될 수 있단 두려움 속에서 나아갔던 시간들이 모래성처럼 부서질 것 같았다.     


그것이 아픈 것보다 더 무서웠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줄 알았다. 아무래도 공모전을 준비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압박 때문에 아픈가보다.     

조급하게 생각 말고, 긍정적이게.     

그런 생각이 우습다는 듯 아픔의 강도는 거세졌다. 역류성 식도염 약도, 목감기 약도 다 소용이 없었다.  불현 듯 혹시 안 좋은 병에 걸렸나 싶었고.     

‘암 아니면 희귀병일까.’     

위암, 갑상선 암, 후두암, 췌장암 등등. 하루 종일 질병을 검색했지만 정확한 병명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오직 무슨 병인지 알고 싶어서 투자했던 나의 시간들. 그 속에서 나는 신체적인 고통과 함께 심리적으로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직장 내 갑질을 당해 퇴사한 걸 가족들이 다 알았고, 그런 상황에서 꿈에 도전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성과가 있어야만 한다.     


나는 꼭 작가가 되어야만 해. 반드시.     

아플수록 강박적 사고에 사로잡혔고, 정신력으로 버티려 했지만, 불시에 찾아오는 고통은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병든 30대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커리어를 쌓아 안정을 구축한 것도 아니고, 건강을 잃어 병든 닭 마냥 비실대며,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     


30대 작가 지망생인 윤 씨.     


그 한 줄이 나를 보여주는 명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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