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한 사람만 알 수 있는 고통
심리와 상황을 교묘히 조작하여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여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그 사람에 대한 통제력과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이것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한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가가 연출한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되었다.
남편 잭이 이웃집 부인을 살해하고 보석을 찾으려 윗집에 가스등을 키고, 아래층에 있던 아내 벨라는 집안이 어두워진 걸 남편에게 말하지만, 잭은 오히려 아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상황을 조작하여, 본인의 범죄를 은폐하고, 부인인 벨라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2007년 미국의 정신분석 심리상담가 로빈 스턴이 ‘가스라이팅’을 정서적 학대를 의미하는 심리용어로 최초로 규정되었다고 한다.
◆ 가스라이팅의 5가지 유형
1. 거부: 피해자의 의견을 거부 또는 이해하지 않는다.
2. 반박: 피해자의 기억을 불신하며 반박한다.
3. 전환: 피해자의 생각을 의심한다.
4. 경시: 피해자의 요구나 감정을 하찮게 여겨지게 만든다.
5. 망각: 실제로 피해가 발생된 일에 대해 가해자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한다.
◆ 가스라이팅의 진행
① 관계 형성: 가해자는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② 기억왜곡: 심리와 상황을 조작해 판단력을 상실하도록 무력화시킨다.
잘못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의심하게 만든다.
③ 심리적 고립: 가해자의 미니마이징이 진행된다.
피해자를 주변 사람들과 단절시켜 가해자를 신뢰하게 만든다.
④ 무시: 피해자를 예민하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간다.
무기력해진 피해자를 조종하며 가해자의 통제권 속에서 움직이게 만든다.
피해자가 겪는 과정은 이러하다.
처음에는 가해자와 ①논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한다.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가해자에게 매달리면서 ②호소한다. 결국에는 스스로가 문제 있다 생각하며 ③자책한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먼저 설명한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을 간접흡연 피해를 겪으며 내가 다 경험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나는 담배 냄새를 맡았다. 몸에 이상 반응도 생겼다. 간접흡연을 당한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아빠는 부정했다. 내가 내민 맹세 서약서에 아빠는 거침없이 맹세를 했다.
“진, 진짜야? 정말이야?”
“그래.”
“아닌데, 분명히 냄새가 났는데, 담배 냄새…….”
내가 피해 겪는 게 확실하다 여겼지만, 상대가 너무 떳떳하게 행동하니까, 순간적으로 ‘어? 내가 잘못 판단했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진짜 내가 담배 냄새를 잘못 맡은 건가 하는 의구심까지 피어올랐다. 당황해서 맹세 서약서를 들고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아빠는 경멸하듯 쳐다보면서 등을 돌렸다.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정말 아빠가 억울한 게 맞고 내가 정말 담배 냄새를 잘못 맡은 걸까.
내 방에서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진짜 내가 틀린 걸까.
아니라고 하는 아빠를 믿어야만 하나.
생사람을 잡는 건가 싶었지만 분명히 내 몸은 이상반응이 생겼다.
‘그래. 내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오랜 생각 끝에 내가 틀리지 않다고 판단 내렸다. 1월 말에도 아빠는 실내 흡연이 적발되었어도 마치 억울한 것처럼 방문을 열어두는 행동을 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왠지 높아 보였다. 처음에는 아빠에게 짜증이 났다기보다 답답했다. 아빠는 담배를 끊겠다고 해놓고 지금껏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이전에도 우기다가 자연스레 흡연하게 된 전례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았다. 심지어 금연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금단 현상이 오고 힘들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는데 또 걸린 게 아닌가. 가장으로써 면목이 없어서 그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죽어도 아니라고 주장하니 나도 내 주장을 펼치지 힘들었다.
‘그래. 이대로는 안 돼.’
증명을 해내고 싶었다, 내가 틀리지 않다는 걸. 내 몸이 아프고 건강이 무너진 원인이 간접흡연 때문이라는 걸. 아빠의 잘못을 따져 시시비비를 물으려는 게 아니었다. 담배 연기가 인체에 영향을 끼쳐 아플 수도 있다는 부분을 설득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빠도 시급히 담배를 끊어야 하지 않나. 의사가 그 어떤 약도 소용이 없고 금연만이 건강을 되찾을 길이라고 했으니까. 아파서 병석에 누워있는 아빠를 상상하니 아찔했다. 자식으로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사명감이 생겨 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는 이랬다.
어려울 때 끌어주고 보듬어주면서
행복한 삶을 위해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라고.
나도 아프지 않고 아빠도 담배를 끊을 수 있는 방법.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열심히 생각해내야 했다. 2022년의 나는 믿었다. 진심을 다하면 상대가 변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건 내 착각과 오만이 아닐 수 없었다.
온 마음을 쏟으면 내 마음만 불탄다, 그것이 가족이라도.
더 이상은 몸이 담배로 인해 아프기 싫었다. 아빠도 흡연을 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충족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건 바로 엄마와 아빠가 방을 바꾸는 거였다.
“나는 더 이상 아프기 싫고, 아빠는 죽어도 담배 안 폈다고 하고, 문제는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는 거니까 이것만 제거가 되면 나도 안심이 좀 될 것 같아서.”
엄마는 그렇게 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빠는 믿을 수 없었다. 아빠가 오기 전에 나는 미리 방을 바꿔서 세팅을 해놓았다.
말 못하게 매트리스도 미리 갖다 두었다. 옆방에도 배란다로 통하는 큰 창문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노란색 테이프로 완전히 봉쇄해 놨다. 바깥에서 몇 겹이고 붙이고 또 붙여서 안에서 열어봤는데 열 수가 없었다.
남자인 아빠도 이 정도면 열 수가 없으리. 뿌듯하면서도 ‘내가 서른 살이 넘어서 이게 뭔 짓거리인가’ 싶은 자괴감도 들었다. 참담하고 씁쓸했지만 내 딴에는 이게 최선이었다.
아빠는 이 같은 상황에 불편한 티를 냈다.
“안 폈다는데 왜 이래.”
“자식이 아프다고 하잖아. 당신도 떳떳하면 협조해줘.”
아빠는 마지못해 안방에서 옆방으로 옮겼다. 테이프로 봉쇄된 방에서 아빠가 머물게 된 첫날부터 내 몸은 멀쩡했다.
그래. 이게 맞았어. 며칠이 지나자 또 몸이 서서히 좋아졌다. 간접흡연 때문에 건강을 잃었던 게 맞다. 내 스스로 더 확신이 들었다.
아빠는 시시콜콜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서 자니까 허리가 베이고, 방이 바뀌어서 잠을 못 자겠고, 너희가 테이프로 다 방을 동봉해놔서 건조해 숨쉬기 힘들다는 등.
엄청난 눈초리와 말들을 들어야 했지만 감내했다. 다시는 담배 연기로 인해 끔찍한 고통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마음은 약간 불편했지만 안심은 되었다. 적어도 아빠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흡연할 거라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또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