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지난 5년여간의 나의 생활을,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를 읽어내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나에게도 통증만 있지는 않았으니까. 관계에서의 희로애락은 어떤 경우에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주어지는 크기와 횟수의 차이만 있을 뿐.
아프기 시작한 처음에 관계의 문제가 있었고 그 골칫거리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것과 통증이 병행되는 한 스트레스에 취약한 병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았다. 감정에 따라 통증의 증폭이 너무 달라서 다혈질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야생동물처럼 거칠게 움직이는 내 감정의 널뛰기에 내가 나를 감당하기 버거웠었다. 생존을 위해 보호색을 띠는 동물처럼 숨어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외면하지 못해 받아야 하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줄곧 노출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행위들을 할 수 없으면서 삶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매일을 견딜 수 없는 통증 속에 살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나는 세상에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나 잘잘못보다는 어떻게 견뎌냈는가에 나를 칭찬하고 앞으로의 고생도 잘해보자... 격려를 하고 싶다. 시간은 참 빨리 흘러서 아파하고 원망하고 소리 지르던 내가 너무 안타깝다.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나를 토닥이지만 오랫동안 나조차 내가 밉고 싫은 시간들을 보낸 부족했던 나를 반성한다.
지금도 바람에 흩뿌려질 마른 흙더미처럼 관계의 문제는 여전히 위태롭게 존재한다. 그 불안함과 불편함을 다스리는 일은 곧, 류마티스를 다스리는 일이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기로 결심하면서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는 상태이다.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이해를 받고 싶다는 마음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요즘 나는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가까이 또는 멀리 두는 방법을 강구한다. 조금만 이기적이 되면 가능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럴 권리가 있다. 나를 다치게 하는 관계를 거절할 권리.
지혜롭게 거절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는 것은 이미 내가 다쳤음을 의미한다. 서둘러 다친 부분을 치유하고 좀 더 지혜로운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치유의 방법은 늘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웃으면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괴로움이 되는 누군가의 해악에서 해방될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이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간의 나를 풀어내는 과정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지만 내 몸의 류마티스를 글로 서술하면서 이제야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뭉친 실타래가 현실적으로 좀 더 풀리는 느낌이다. '발행'을 할 때마다 망설임도 있고 가끔 멈칫하기도 하지만 나를 보호하고 응원할 수 있는 '글'이라는 무기가 하나 더 있음에 감사한다.
일러스트: instagram.com/bona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