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다. 어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완전히 나를 놓아 버리는 경우는 없었다. 힘듦은 그대로 느끼지만 언제나 출구를 찾고 도전해 왔다. 유학시절에 엄마에게서 편지가 한 통 왔었다.
언제나 오뚝이 같은 우리 딸, 유학생활이 힘들 텐데 불평 한마디가 없으니 기특하면서도 미안하다.
엄마의 편지에 써져 있는 글귀이다. 엄마의 말처럼 나는 어쩌면 오뚝이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세금을 지원받아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부모님의 지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힘든 상황이 있을 뿐 세상이 끝난 건 아니니까 라는 마음이 강했으니까. 그 강함은 어려서 병치레를 하고 1년간 휴학생활을 하면서 내 속에 장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입학 후 1년을 혼자 공부했고 혼자 놀았다. 열세 살의 나는 마땅한 친구도 없이 집에서 도서관에서 1년의 시간을 보냈었다. 복학 후에도 얼마동안은 급우들과의 나이차이로 친구관계도 애매했던 기억이 있다. 혼자였지만 혼자라고 느끼거나 우울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그때의 흐릿한 기억 속에서 가장 선명한 마음속의 사진은 가족들과 깔깔대고 웃으면서 음식을 나누던 내 모습이다.
아,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보냈었다. 복학하기 전까지 다녔었는데 그 덕분에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건반 위에서 물결치는 선생님의 손가락에 반해서 간식으로 주시던 맛있는 김밥에 반해서 매일 학원 가는 일이 기다려졌었다.
류마티스가 시작되면서 1095일여간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나도 행복하게 연애하던 나도 씩씩하게 난관을 이겨내던 나도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어둡고 침울했다. 매일이 낭떠러지이고 누가 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그게 내 모습의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다시 예전의 웃음을 되찾기 시작한 건 병세가 호전되면서부터가 아니다. 나아야겠다는... 어느 날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삶의 의지가 타닥 불꽃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을 밟고 일어나면서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킨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세로토닌은 행복호르몬으로도 불리며 우울증과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을 준다. 그 뒤로 하루에 십 초 정도를 웃었고 일분, 한 시간, 하루... 그렇게 다시 행복해져 갔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 소리를 찾아내길 바란다. 낙천적이 아니어도 낙천적일 수 있고 불행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지탱하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거울을 보며 웃자. 그 웃는 모습에 감사하고 행복의 맛을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반드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instagram.com/bona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