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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Sep 15. 2023

불안감

열심히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떼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지만

실은 쉬면서도 계속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하던가 취미를 키우던가 실제로는 뭐든 하지 않을까?

August.16 instagram @bonas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던 첫날이 생각난다.

늘 그랬듯이 같은 시간에 눈은 떠졌는데 뭘 해야 할지 망막했다. 

이른 아침에 샤워를 하고 식사를 한 뒤에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출근시간인데... 퇴근하면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던 내 집안의 공기가 그렇게 공허하고 낯설 수가 없었다. 집안을 빙 둘러보다가 세탁기에 이불빨래를 넣고 돌렸다. 창문을 열어 먼지를 털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끝내고 나서 시간을 봤는데 여전히 정오가 안 되었다. 멍하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 하고 일어났다.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한 후에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보러 간 곳은 근처에 있는 백화점이었다.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서니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이 시간에? 평일 이 시간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생각하며 지하매장으로 내려갔다. 필요한 물건들만 간단히 쇼핑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 물건들을 정돈하고 나니 겨우 식사 때가 되었다. 왠지 할 일이 생긴 듯이 기뻤다.

두부지짐을 하고 달걀말이를 해서 식탁 위에 올린 후에 김을 꺼내 간단한 식사를 했다. 


이제 겨우 오후로 넘어간 시간, 나는 다시 할 일을 찾았다. 

옷장을 다시 정리했고 욕실 청소를 하고 몇 가지 밑반찬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출퇴근 없는 첫날이 지나갔다. 한 시도 쉬지 않았던 나의 하루를 보내고 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적었었다. 

출근을 안 하니까 할 일이 없다. 내일은 뭘 하지? 하지만, 나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바쁘게 보냈다.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된 이후로 늘 직업이 있었다. 학교를 가지 않으면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가 일을 그만두면서 갑자기 밀려온 공허함과 불안감이 오히려 나를 더 바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지만 나는 늘 내일은 뭘 하지... 를 고민했었다.


지금은 태생이 그런 것처럼 잘 쉬는 사람이 되었다. 쉬는 동안,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고 내일이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일도 없다. 가만히 음악을 듣거나 그냥 누워 있기도 하고 여행지를 상상하거나 영화를 몇 편씩 보기도 한다. 오히려 '쉼'이 없는 인생의 삭막함을 알게 되었고 잘 쉬는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인생이 조금 한적할 때에도 불안해하지 말자. 그 한적함에 안기다 보면 그간의 인생이 더 불안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일을 잘하는 노력만큼 나를 쉬게 해 주자. 잘 쉬어준 나는 내 인생의 가치를 올리는 데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



.

.

.

백 년 동안 쉬어서 아주

기분이 좋다고 

그렇게 말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백 살이 되면> 황인찬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들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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