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할 때 나의 영혼은 고요하지 않다. 나의 모든 감각과 영혼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며 허공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구름 위로 솟구치기도 하고 바닥을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기도 한다. 글자를 읽어가고 탐닉하며 스토리를 읽어가고 상상과 망상의 경계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다.
조용히 책을 읽었다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조용히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백 년을 굶주린 늑대가 쪼그라든 배를 채우려는 듯 우걱우걱 글을 대충 씹어 마구 쑤셔 넣듯이 먹어댔다. 대신 그동안 내가 먹고살았던 썩은 찌꺼기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 주변의 사물과 공기와 냄새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나는 천성이 예민한 사람, 마음 한 편은 늘 내 주변에 구속되어 있지만 유일하게 우리에서 풀려나 도시를 달리는 말처럼, 나무숲이든 빌딩숲이든 직진본능으로 뛰어 나가는 시간을 독서에서 갖는다.
나는 어쩌면 책을 읽는 동안 현실에 완전히 적을 두지 못하는 형체만 사람인 유령으로 변형되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둥둥 떠있는 희고 가벼운 물체처럼 내 머리 위에 떠있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밤마다 꿈을 꾸는 소년은 매일 집밖으로 날아 나가서 붉은 문을 통과해 낯선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 세상은 죽음이며 존재하지 않지만 소년은 날마다 조금씩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다가 결국 사라져 간다. 내게 책은 그 붉은 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라져 가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책을 읽는 모든 순간이 죽음이며 모든 순간이 삶이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실의 세계이며 꿈의 세상이다. 지금 책은 나를 어디에나 존재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