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인 걸로 기억한다. 얼굴이 예쁘고 키가 큰, 장래희망이 작가였던 친구가 있었다. 눈이 작은 조약돌처럼 생겼는데, 부드러운 눈망울과 두툼한 입술이 잘 기억난다. 그 친구는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보니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나는 그 친구의 귀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날에 함께 교문을 나서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나와 같은 방향으로 먼저 걸어가서 귀갓길이 비슷한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로 함께 집으로 향하게 되면 늘 그 친구의 뒤를 따랐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으로 걸어갔다. 거의 뛰듯이 걸어가는 그 친구는 항상 골목 어귀쯤에서 사라졌다. 마치 연기처럼 사르륵.
그날도 그 친구는 어김없이 수업이 끝나자 서둘러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그때쯤에 나는 이미 그 친구에게 호기심이 잔뜩 생겨 뒤를 밟듯이 따라가고 있던 때라 역시 가방을 얼른 챙겨서 뛰듯이 쫓아갔다. 그날은 그 친구의 걸음이 달랐다.
친구는 나와 발걸음을 맞추듯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늘 지나가다 사라지는 골목 어귀쯤에 다다르자 멈춰 서서 뒤를 돌았다.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우물쭈물하며 친구를 따라 멈췄다.
"너, 우리 집에 갈래?"
"응?"
"가자, 점심 먹고 가."
"으응, 그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가 우리를 한데 묶고 있었다. 우리는 발걸음을 맞춰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은 골목 어귀를 돌아서면 나오는, 담벼락에 붙어있는 작고 녹이 슬어 있는 철문을 열면 나오는 곳이었다.
나는 신비의 세계로 향하는 문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담이 열리다니...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언니~"
쫓아와서 와락 친구에게 안기는 꼬맹이는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다. 동생이라고 했다. 안녕! 하고 인사하며 나는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거실로 보이는 마루턱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내가 앉아 있는 그곳과 벽사이에 있는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주섬주섬 프라이팬과 감자와 숟가락을 꺼내고 잠시 후에 밥솥에서 찬밥을 크게 몇 숟가락 꺼냈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감자껍질을 벗기고 작게 깍둑썰기를 해서 밥과 함께 기름에 볶기 시작했다. 몇 분을 볶다가 조심조심 간장을 부었다. 그리고는 잽싸게 다시 볶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볶음밥 세 공기와 숟가락 세 개가 쇳소리를 내는 밥상 위에 올랐다.
나는 배가 고팠고 친구가 볶아준 밥은 내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허겁지겁 먹었다. 밥은 순식간에 그릇에서 사라졌고 친구는 다시 익숙하게 설거지를 마쳤다. 친구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우리 셋은 재잘재잘 배부른 즐거움에 소리 높여 떠들어 댔다.
그날 저녁 나는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그 시간까지 친구의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연락도 없이 놀다 왔다고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
가끔 감자볶음밥을 해 먹는다. 건강을 위해 당근이나 양파 같은 다른 식재료를 넣고 올리브유에 볶는다. 아무리 해도 친구가 간장만 넣고 볶았던 맛있는 볶음밥은 되지 않는다. 감자만 넣어도 같은 맛은 나지 않는다. 친구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맛은 정말 우습게도 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길에서 마주쳐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어서 친구가 스쳐 지나갔어도 모를 인연이지만 그 시절의 어떤 추억보다도 그날이, 그날의 친구 얼굴이, 그 맛이 선명하다. 얼마 후 친구는 전학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