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부대찌개가 끓는다. 고기도 익고 소시지도 익고 김치 익어가는 냄새가 집안을 휘휘 젓는다. 매콤한 냄새에 침이 고여서 몇 번을 꼴딱 꼴딱 삼킨다. 오랜만에 맡는 냄새가 반갑기는 한가 보다. 구석구석에 들이찬 부대찌개 포스가 허브향까지 다 날려 버릴 듯하다.
향에 예민한 덕분에 집에는 디퓨저와 허브에센스가 구석구석에 놓여 있다. 베란다와 현관에는 마레의 아쿠아 델 엘바 디퓨저가 욕실은 논픽션의 가이악플라워향이 핸드워시, 바디로션, 핸드크림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분에 따라 사용하는 아로마 오일도 곳곳에 놓여 있다. 아로마오일을 이용해서 직접 조합한 세로토닉퍼퓸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 가끔씩 맥박이 뛰는 곳에 발라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손목과 뒷목에 살짝 발라놓은 플로랄향이 바람에 실려 코끝에 살랑거리면 기분이 좋아져 배시시 웃음이 난다. 들큼하고 배부른 찌개냄새도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내겐 꽃향기 풀냄새를 풍기는 허브향의 풍미가 훨씬 더 좋고 에너지가 된다.
커피 향도 좋아한다. 커피 향에는 이유 없이 행복해진다. 카페인과민증이 있어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카페인 섭취가 아니라 향이 좋아 카페를 간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갇혀 있는 동네의 작은 카페를 좋아한다. 커피 향을 쫓아 날아든 벌이 되어 꿀 빨듯이 향을 들이켠다. 번잡스러운 대형 카페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커피향보다 소음이 진하고 사람들이 풍기는 잡다한 냄새가 더 나서 커피 향을 음미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러고 보면 좋아하는 카페에서 좋은 커피 향도 나는가 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은 약초향이다. 내게 약초향은 아빠의 냄새이고 그리움의 향기다. 항상 한약을 만지시는 아빠에게는 약초향이 배어 있었다. 아빠의 살냄새와 섞인 그 약초향은 한 남자의 고된 삶의 냄새였겠지만 딸인 내게는 너무나 좋은 아빠냄새였다. 아빠의 등에 코를 대고 눕는 걸 좋아했고 손을 잡고 걷고 나면 꼭 내 손안에 밴 그 묵직하고 편안한 향기를 깊숙이 들이키곤 했었다. 아직도 그 향기를 기억한다. 기억한다기보다 부여잡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수도 있겠다.
봄이 오면서 벚꽃향기가 진해지고 있었던 어느 날. 비가 그치고 나면 근교로 향기욕을 떠나야지 했는데 잠깐 내린 비가 벚꽃 잎을 데려가 버리고 말았다. 내년에는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겠다고 꽤나 진지한 다짐을 하며 듬성듬성 벚꽃이 남아 있는 나무에 자꾸만 아쉬운 시선을 두고 걸었다.
한참 그 길을 걷는데 곁을 스치는 남자에게서 한약냄새가 났다. 순간 그 남자를 불러 세울뻔 했다. 추억이 되지 못하는 아빠의 향이 자꾸만 가슴을 두드린다.